지난 토요일(2월 11일)밤, 친구랑 일주일 기차여행을 떠난 딸아이가
매일 저녁 행선지와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해오는데
며칠 전 저녁 밤 9시쯤 성적이 비슷한 아이 둘이
서강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에 추가 합격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친한 친구의 즐거운 소식에 충분히 기뻐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지만
아주 잠깐이었지만 수화기 너머 우울한 느낌이 감지되었다.
서울대와 연세대를 목표로 재수를 한 아이는 평상시 성적보다는 못하지만
작년과 올해 모두 전국 상위 1%내의 성적을 받았다.
삼수를 불허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보험 넣는다는 심정으로
가군에 이화여대를 넣고 나군은 소신지원 했는데
이대는 어느 과를 지원해도 최상위성적이라 우선선발은 당연했기에 합격소식에도 웃을 수 없었다.
소신 지원한 다른 학교는 2차 추가발표가 난 오늘도 한명 밖에 빠져 나가지 않아
예비번호 3번이지만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아이 친구들의 소식이 전해져 올 때마다
아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보다 못한 남편이 아내인 나를 단속하기에 나섰다.
덕분에 지난 밤 30분가량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했다.
가장 속상한 사람은 아이인데 부모가 흔들려서 안 된다며 부모가 자식을 자랑스럽게 여겨야지
이 상황을 아이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남편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했다.
오늘 ‘서울 상위권대학 역전현상 하향 안정지원 영향인듯...’
신문기사를 읽고 슬그머니 다시 고개 드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씁쓸하다.
연대, 고대, 서강대 최상위과 2차 추가 합격선이 아이와 점수가 비슷하거나 낮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이 성적이 연세대 경영학과뿐 아니라
타 학교 최상위과도 합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순간 화가 났다.
이미 지나간 일을 현실로 돌린다 해도 꿈이 너무도 뚜렷한 아이가
신문에 게재된 과에 지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욕심을 내려놓고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친구들이 서울대나 그 밖의 최상위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해도 기죽을 필요는 없으며
만약에 네가 SKY 중에서 네 꿈과 거리가 먼 학부나 과에 합격을 했다고 가정을 해도
합격의 즐거움은 짧아 넌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과정은 수능점수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네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데 너 다울 때 가장 멋있고 빛난다고...
네가 만들어 갈 너의 미래가 엄마는 너무 궁금하고 기대되고 설렌다고...
그러니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언제나 네 뒤엔 말없이 지켜봐주고 응원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아이들의 교육이나 행동에 나보다 훨씬 더 이성적인 남편은 두 아이에게 말한다.
대학 입학한 해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 다음에는 휴학을 하고 외국으로 나가든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나가보라고 조언을 한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의 선택에 대해 적극 밀어주겠다고 말하는 남편은
20대는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30대에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동갑내기 남편이지만 남편을 통해 참으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낀다.
내 행복의 8할은 가족이라는 걸 날마다 기쁘게 확인하는 것도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편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감사할 줄 아는 미덕과
남과 비교할 줄 모르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은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할 덕목이다.
갑자기 즐거워진다.
세상일은 마음먹기 따라 달라진다는 말,
지금 이 순간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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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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