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받아온 첫 성적통지표
어땠니?
7월 6일 수요일부터 7월 9일 토요일까지 기말고사시험을 친 딸 학교에
목요일 시험감독 하러 갔다 온 소감 말이야?
요즘 애들 참 힘들겠다는 생각 들지 않았니?
컨닝을 애당초 할 수 없게끔 연구한 학교당국의 노력으로 인해
시험치는 날,
학년도 섞고 줄도 섞어
익숙한 자기교실에서 전원 시험 볼 수도 없었던
그 모습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니?
꼭 이렇게 해서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 걸 가려야 하나 싶은
안쓰러운 생각은 들지 않았니?
뭐라고?
물론 안쓰럽고 안타까웠다고...
그런 상황을 보고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너는 너무 냉정한 사람이거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모진 사람이라고 비난하려고 했는데
나로 하여금 독한 말을 하지 않게 해주어서
고마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너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인데
앞으로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거 버릴 수 없으면 반으로라도
줄여.
그래야 너도 아이들도 편안해지지 않겠니?
물론 알아.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막연한 욕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넌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
비교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라며
비교를 통해서 인간은 더한 성숙과 성장을 거듭한다고...
그래. 네 말에도 분명 일리가
있어.
과학의 발달로 인해 달나라도 갈 수 있게 된 현실을 냉정히 분석해보면
정정당당한 비교는 경쟁을 뛰어넘어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지.
방학하는 날, 중학교 들어가서 받아온 첫 성적통지표를 보고
수고했다는 칭찬보다는 수행평가에서 흡족한 점수를 받지
못해
전교등수가 하락한 몇 개의 과목을 보고 홈런을 날리듯 단숨에
숙제든 뭐든 자존심을 가지고 제대로 하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때
너 참 밉상이더라.
알아.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네가 낳은 두 아이 모두
텔레비전을 유난히 즐겨본다는 것과 잠이 많다는
거...
그것으로 인해 아이들과 토닥토닥 말다툼을 하는
네 입장 충분히 이해가 될 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이해가 돼.
그래. 알고 있고 이해한다니까.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지금보다 하루에 30분 줄여서 공부를 한다면
늘 상위 3%이내에는 속할 텐데 신경을 쓰면 1%대에
머물고
조금 느슨하면 5%대마저도 흔들리는 두 아이를 보고
자꾸만 욕심을 내는 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이해해.
하지만
아이들도 아이 입장이 있어.
다른 엄마들은 반에서 5등 안에만 들어도
엄청나게 칭찬을 한다던데 하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걸 생각해 봐.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너,
아이한테만은 욕심이 많다는 걸 알겠어.
그렇지만 잘 할거라는 믿음으로 한발 물러선 거리에서
지켜봐 줘.
그래야 너도 아이들도 편할 거야.
네 하루를 돌아다 봐.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네가 지금 네 딸처럼 중학생이 된 그 해부터 마흔을 넘긴 지금까지
30년 동안 5시간만 자도 끄떡없는 의지의 한국이라며
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하고 있지만
글이라도 좀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은 날이면
네 수면시간은 3시간으로 줄어드는 거.
너한테 게으르게 살았다거나
불성실하게 살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좀 느슨해지는 법을 내
것으로 품어 봐.
이제 네 나이도 마흔을 훌쩍 넘겨버렸잖아.
언제까지 그 열정이 살아 너를 지탱해줄지 모르겠지만
가끔 너를
보면 안쓰러워.
제발 부탁이야.
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견고하기 그지없는 네 마음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움직여
봐.
솔직히 너도 가끔은 쉬고 싶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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