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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곰을 닮은 강아지 곰지 이야기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8. 8.

 

 

 

나래(암놈인 진돗개의 이름)의 울음소리가 여느 때와 달라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래가 있는 울로 나와보니 보기에도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한 나래가 개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넓은 울안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정신 없이 쏘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혹여 하는 생각에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 같지 않은 고민에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그 이전에도 뱃살이 하루가 다르게 통통 오르고 젖꼭지가 커지는 것 같아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 잔뜩 기대를 했다가 단순히 살찐 비만상태라는 걸 알게 된 일이 있어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나래, 왜 안 자고 그래. 무슨 일 있어? "하고 평상시처럼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하듯 묻고는 자다말고 깨어난 그 새벽에 정원이며 나래가 있는 주변을 살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나래에게 잘 자라는 밤 인사를 남긴 후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으로 들어온 후에도 나래의 낑낑대는 소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지만 자다말고 일어난 그 새벽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저러다 말겠지 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난 남편이 밤새 나래가 낑낑대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내 말에 별일 없는지 살피러 밖으로 나갔다가 거실로 올라가는 입구 넓은 계단 아래 나래와 함께 있는 어린 강아지들을 발견하고는 주방에서 아침 식사준비를 하고있는 내 곁으로 다가와 나래가 새끼를 낳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흥분이 채 사라지지 않은 듯 들뜬 표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남편의 얼굴에서 사실이구나 하는 걸 감지하고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보았다. 보고있어도 꿈인가 착각할 정도로 신기한 일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그렇게 나래는 누구도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7월 22일 금요일 새벽 2시를 넘긴 시간부터 아침이 밝아오는 무렵까지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개를 키워본 경험도 없거니와 더구나 어미가 새끼를 낳은 모습을 직접 가까이에서 본적 없는 남편은 꼬물거리는 어린 생명을 도저히 만질 수 없다며 강아지 보살피는 일을 내게 떠넘겨버렸다. 나 역시 경험 없기는 마찬가지이나 그동안 좀더 세밀한 관찰을 하지 못했던 점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한번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그 무엇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성격 탓에 경험은 없지만 자식 둘을 낳은 어미의 심정으로 돌아가 천을 자르고 실을 자를 때 쓰는 가위를 뜨거운 불로 소독하고도 다시 한번 펄펄 끓는 물에 5분 이상 소독해 식힌 후 갓 태어난 새끼들의 탯줄을 정성을 다해 적당한 길이로 잘라주었다. 아침 시간 뜻밖의 선물로 인해 분주해진 내가 식구들 먹을 아침식사 준비하랴 어린 강아지와 나래 보살피랴 걸음걸이마저 휙휙 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남편은 어린 강아지의 탄생이 백구의 빈자리로 인해 허전했던 마음을 채워주는 듯 기뻐하는 얼굴빛을 띄고는 나래가 밤새 새끼를 낳으며 흘린 배설물들을 치웠다.


어미인 나래가 채 두 돌도 되지 않은 어린 견(犬)인데다 초산에 너무 많은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인지 태어난 새끼들 중 두 마리는 너무 작고 약해 보기에도 안쓰러워 어떻게 해야 어린 강아지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게 했다. 산모인 나래를 위해 영양식을 끓이고 멀쩡히 사용하는 얇은 이불을 나래와 태어난 새끼들을 위해 깔아주고 젖 빨 힘도 없는 어린 생명을 위해 직접 손으로 어미젖을 입에 물렸다. 눈도 뜨지 못한 갓 태어난 새끼들이지만 어미의 젖을 입에 갖다대니 여섯 마리 중 네 마리는 본능적으로 힘차게 젖을 빨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태어날 때부터 위태로워 보였던 여린 두 놈은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대구 날씨에 지쳤는지 어미젖에 입을 가져다 밀어 넣어도 입술을 움직일 생각은커녕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한 결과 한 놈이 스스로 입을 열어 어미젖을 빨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 순간 내 눈에서는 안도의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생명을 살려야한다는 생각에 집안 일을 대충 정리해놓고 남편과 할인점에 가서 우유병과 분유를 사 가지고 왔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어린 생명을 집안으로 데리고 와 분유먹이기에 애를 썼지만 우유 병에 담긴 분유는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섯 마리 중 가장 약하게 태어난 강아지는 첫날밤을 내 보호아래 보냈다. 배가고픈지 20∼30분 간격으로 울어대는 어린 강아지를 내 새끼 품에 안듯 가슴에 안고 한 방울의 우유라도 더 먹일 요량으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생명에게 "먹어야 산다. 제발 건강하게 살아 줘..."라는 기도를 수도 없이 되 내이면서 거의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개들은 숫자개념이 없다는 전문가의 말이 있었지만 어린 산모 나래는 본능적으로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새끼를 찾느라 앓는 소리를 내며 넓은 울안을 왔다갔다 바쁘게 움직여,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느꼈던 가족들과 상의 끝에 결국 하룻밤을 밤새 내 보살핌을 받아 그나마 숨쉬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 연약한 놈을 어미인 나래 품에 돌려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이 어린 생명의 위태위태한 줄을 놓고만 결과를 초래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안타까운 죽음도 바이러스처럼 전염이 되는지 어미젖을 물리면 곧잘 빨곤 하던 다른 한 놈도 점심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연이어 삶의 끈을 놓고 말았다.


충격이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충격이 거기에서 멈추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그 다음날에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충격은 기어이 일어나고 말았다. 낮 동안 두 세 시간에 한번 간격으로 방학이라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딸아이와 번갈아 가면서 어린 새끼들에게 어미젖을 물려 시간이 흐르면 건강하게 잘 자라주겠지 했는데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에 밤새 젖을 제대로 빨지 못했는지 세 마리의 어린 생명이 채 눈도 뜨지 못한 채 허무하게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이럴 수는 없었다. 서너 군데 동물병원에 아기 강아지들의 상태를 전화로 자문도 구하고 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막힌 사실에 심장이 얼어버렸는지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여섯 마리 중 다섯 마리의 강아지를 이틀만에 잃어버린 우리가족은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하는 긴장 속에 하루 하루를 보냈다. 어미인 나래와 어린 생명이 건강해질 때까지는 모든 생활의 중심이 두 마리의 진돗개를 우선으로 해야만 되는 것처럼...


동물병원에서 산모인 나래가 잘 먹어야 젖이 잘 나온다며 닭죽을 끓여주라는 말에 나는 매일이다시피 닭을 사러 할인점이나 동네 재래시장을 찾아야만 했다. 사 가지고 온 닭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 조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찬물에 여러 번 씻어 핏물을 빼고 닭이 잠길 만큼 분량의 물을 넣고 끓인 뒤 첫물은 버리고 다시 물을 붓고 푹 고와서 불려 놓은 쌀을 넣고 오래도록 끓였다. 산모인 나래를 위해 소금간을 하지 않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약간의 구토와 설사증세가 있는 나래를 위해 기름기 많은 닭 껍질까지 제거해 보기에도 산모인 나래가 먹기에 안성맞춤인 부드러운 닭죽이 완성되었다. 어린 강아지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고 죽음 역시도 함께 안타까워한 남편은 끓인 닭죽 속에 있는 뼈를 일일이 발라내고 하루에 두 번은 영양식을 한번은 우유를 주는 나래 먹이 챙기는 일과 나래 주변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며칠이 지났건만 어미인 나래는 여전히 소리와 낯선 이에 대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 나래를 위해 놀래는 일이 없도록 가족 모두 집안을 들고 날 때 조심 또 조심을 해야만 했다. 이런 노력은 어린 강아지 젖먹이는 일을 도울 때에는 나와 딸아이로 하여금 휴대전화기마저 몸에 지니지 않는 습관으로 변화시켰다. 호기심 많은 나래가 소리에 반응을 해 새끼에게 어렵게 물린 젖을 인정사정 없이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는 일이 잦아서이기도 했지만 홀로 살아남은 강아지가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놀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노력은 그 정도 정성에서 그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일주일에 두 번 통닭이나 탕수육을 시켜 먹던 리듬까지 사라지게 했다. 이유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나래를 위해서 가족이 아닌 그 누구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배려에서 시작되었지만 일정기간이 흐르면 다시 되찾을 리듬정도는 당분간은 가족 중 그 누구도 투정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곰지가 선물처럼 우리 품에 안기기 전,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하루가 너무 짧다라고 행복한 투정을 했던 나도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일만은 길게만 느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어린것이 차라리 내 새끼라면 품에 안고 얼러서 어떻게든 건강하게 키워보겠지만 초산인데다 아직 철없는 어미인 나래는 모성애는 있는 것 같은데 진득하니 새끼에게 젖 물리는 것보다 새끼를 돌봐주느라 곁에 있는 딸아이와 내게 더 관심을 보이고 사랑 받기를 원하니 올 여름은 유난히 더 덥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섯 마리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가족들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강아지 이름은 처음 보았을 때 곰을 닮았다 해서 곰지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곰을 닮은 강아지 곰지는 백구라는 이름을 지어 줘 나래보다 특히 백구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았던 아들 녀석이 지은 이름인데 부르면 부를수록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곰지가 세상에 태어난 지 만 보름이 되는 날이다. 강아지들은 평균 15일이면 눈을 뜬다고 했는데 곰지는 13일이 된 엊그제부터 실눈 같은 눈을 살며시 떠 우리가족으로 하여금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곰지가 7월 22일 금요일에 태어났으니 개들의 임신기간을 평균 60일로 계산해서 볼 때 곰지는 아비인 백구가 우리가족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날로부터 약 10일전 즈음에 새로운 생명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곰지는 태어날 당시에는 흑구로 착각할 정도로 까만 털이었는데 자라면서 점점 호구인 어미를 쏙 빼 닮아 온몸을 감싸고 있는 털이 호피무늬로 변하고 있다. 그런 곰지도 입술 아래와 가슴 가까운 부위에 작지만 아비의 흔적인 하얀 털이 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생사도 알 수 없어 허전한 백구의 빈자리를 앞으로는 그 새끼인 곰지가 채워줄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보름 동안 우리가족 모두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살아남은 곰지를 통해 더 크고 더 깊게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두리 뭉실 살 찐 곰지를 보고 이렇게 살이 쪄도 되는 건지 몰라 하고 미소를 띠며 말하는 남편의 행복한 표정과 보고 또 봐도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나래와 곰지가 더위에 힘들까봐 학원수업 마치고 돌아온 오후시간, 현관 옆 계단에 데리고 와 부채로 시원한 바람도 만들어주고 젖도 물리며 놀아주는 두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와 진도견을 키우기 전에는 매달 두세 번 토요일이면 습관처럼 가족여행을 떠났던 기억을 떠올리면 올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오직 나래와 곰지가 건강하기만을 바란 가족들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고맙다. 오늘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은 그 어떤 것도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생명존중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을 스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깊은 산 속 누구의 시선도, 발길도, 손길도 닿지 않는 곳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과 정원손질 하다 내 발아래 밟혀 죽은 개미들까지 이 세상에 할 일없이 온 생명은 없으니 부디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기를...... 

 

  

 

 

2005년 08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