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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기억의 창고에서 그녀를 만나다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9. 5.

mp3에서 흘러나오는 ‘이수영의 휠릴리’를 듣다가 생각난다는 듯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열어 아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릎을 세워 앉아 11월의 창 밖을 내다본다. 며칠 전, 산수유 술 담그고 나머지는 차를 달여 마신다고 잘라낸 산수유나무의 휑한 모습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봄의 전령이라는 대명사답게 노란빛을 함박웃음처럼 터트려 보는 이로 하여금 환한 미소를 머금게 했던 산수유 꽃도, 여름 한철 무성한 꽃잎 사이사이로 열매를 가득 품고 있던 모습도 옛 영광처럼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는 구멍 뚫린 듯 텅 비어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 한켠이 싸해진다. 싸하다는 생각을 하자 몸에서 바람이 느껴진다. 이런 기분이 들 때 나는 어김없이 집안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거나 음악의 볼륨을 크게 올려 따라 부르다가 따라 부르던 내 노래 소리마저 어느 순간 들리지 않는다 싶을 무렵 마음으로 젖어든 음악이 서서히 내 몸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춤을 추거나 아니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시끄러운 소리는 그래서 가끔 고맙다. 시끄러운 소리를 방패삼아 내 안에서 들끓고 있는 것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달랠 수 있으므로.

2004.11.15 17:04:27

 

 

조금 전, 음악에 취해 내가 춤추는 동안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그 순간 누군가 나를 훔쳐보았다면 나는 아무도 없는 객석에서 관객이 되고 주연이 되어 춤을 추지는 못했으리라. 음악이 다른 곡으로 바뀌자 아무 일 없다는 듯 동작을 멈추고 산수유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행히 아직 새는 날아가지 않았다. 지나가는 새들 양식이나 하라고 남겨둔 빨간 산수유열매를 따먹는지 새들은 나의 시선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건드리면 톡하고 요정들이 나타날 것만 같은 빨간 산수유열매가 눈앞에서 순간 흔들린다는 생각을 하자 내 앞에는 상상의 숲을 펼치며 어디론가 떠나는 내 모습이 보인다.

2004.11.15 17:0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