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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열 셋)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9.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꽃봉오리처럼 싱싱한 생명 하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소식 전해들은 오늘 아침...

 

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었다
스물 다섯 파릇한 나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영원의 시계를 멈추어 버린 영철이...

 

그리고 
열 여덟 생도 살지 못한 
차마 삼킬 수도 없는 아까운 이름 민석이...

 

민석아,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아래 쏟아지는 햇살과
살랑대는 바람을 네가 느낄 수 있다면
너 역시 영철이와 같은 나이 스물 다섯이구나.

 

영철이 영전 앞에서
나는 또 다시
이모라고 불려지는 내 호칭이
이렇게 뜨거운 이름일 줄 미처 몰랐다.

 

모두들 크고 작은 아픔 겪으며 산다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사람 살고 죽는 거 인력으로 할 수 없다지만
날개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부모들 가슴에 묻힌 너희들을 생각하면 
이모는 산다는 게 한없이 막막하고 두려워진다.

 

영철아,
민석아,
지상에서 너희 둘이 피워내지 못한 꿈...
기억한다는 말조차 너무도 서늘하고 아파서
소리내어 말 할 수 없지만
부디 너희 둘 영혼만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돌고 도는 세상
억겁의 세월이 흘러 그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너희 둘 이 세상에서 못다 한 목숨까지 살아
유장한 세월 참으로 잘 살아냈노라 말할 수 있기를
이모는 간절히 바라고 또 원한다.

 

미안하다.
이 말 밖에 할 수 없는 이모가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잘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조차 쉬 하지 못한 이모가 2004년 2월 29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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