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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깊고 낮은 읊조림(일흔 일곱)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12. 30.

후후... 우습다.
한번도 단호하게 홉스가 말한 ‘장애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자유를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면서 
발칙하리만큼 철저하고도 위험한 자유를 꿈꾸는 내 모습이...
내가 꿈꾸는 자유는 더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가 아닌 
넘지 못할 산을 정복한 느낌을 맛보는 
그 순간의 기쁨과도 같은 것임을 알기에
나는 나의 자유를 향한 의지에 대해 
멈출 이유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낯선 걸음을 떼야 하는 선택 혹은 결단의 자유 앞에서 
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거역할 수 없는 눈빛과 마음으로부터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 지금껏 지키고 가꾸어 온 것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지켜보고 인정해주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참 자유가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때에 따라서 그 본능이라는 것이 
원치 않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파격적이고 예측 불허한 변신을 상상하는 나와 
견고한 현실 사이에서 안주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아주 짧지만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다른 외부환경에 의해 변화할까 
늘 단호한 말투로 세뇌교육을 시키는 내 남자가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서도 
한번쯤은 모른 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름다운 구속을 당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는 걸 인정하고
또 그 소속감이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고 해도...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배제하고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을 둘러싼 배경과 상관없이 말이다.

2005년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