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과향기

봄밤에 띄우는 편지

by 시인촌 2006. 4. 10.

그리운 어머니,
오랜 나날 소식전하지 못한 그동안의 불효 용서해주세요.
매순간은 아니지만 자주 그리고 오래도록 그리웠어요.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생각,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순간이면
가슴은 늘 터질 듯 아팠어요.
살아생전에 사랑스러운 모습 많이 보여 드려야했었는데 하는 후회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피해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지만
이 또한 제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의 모습이겠지요.

 

 

어머니, 이곳은 그야말로 꽃 잔치가 열렸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월에 어머니 당신은 어찌 지내시는지요?
지난 주 목요일 퇴근하는 길에 오빠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어요.
잘 지냈느냐는 몇 마디 안부의 말이 오고간 뒤
"숙아, 오빠가 골치 아픈 일이 좀 생겼다......"
폭탄처럼 쏟아낸 오빠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어요.

 

 

일주일 전, 오빠 꿈속에 어머니가 오셨대요.
그런데 앞에 있는 오빠를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만 하셨대요.
그래서 내내 마음 한구석 무겁고 아팠는데
오빠가 다니는 다국적 기업인 글로벌회사 그룹회장이
본사로 들어오라는 전화를 직접 했대요.
어머니 살아 계실 때도 인도네시아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외아들인 오빠가 종갓집을 홀로 품고 사시는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떠나지 못했던 일 기억하시지요?
그때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이유가 되어 회사를 설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회장의 제의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이 땅에서 살기 힘들다며 이민 가는 사람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좋은 직장에서 능력 인정받고 산다면 그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 머나먼 이국 땅에 가서 사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여야 말이죠.
그곳에 가면 집, 자동차, 운전기사까지 나오니 사는데는 불편함이 없겠지만
종갓집 외아들로 태어난 오빠는
고향집이며 어머니, 아버지 산소 벌초생각만으로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운재와 고등학교 들어간 동헌이 장래까지 달린 문제라
어찌해야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지 답답한가봐요.

 


누구는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선진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난다지만
인도네시아는 상황이 다르잖아요.
혼자 떠나려니 걸리는 게 많고
가족과 함께 떠나자니 아이들 교육이 가장 큰 걸림돌이고
한창 일해야 할 사십대에 사표를 내자니 앞일이 걱정되고... 
어머니 도와주세요.
오빠네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해야
먼 훗날 가장 아름다운 결정을 했노라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지...

 

 

어머니, 우울한 이야기부터 전하게 되어서 죄송해요.
좋은 소식도 많지만 오빠 소식이 가장 궁금할 것 같아서 오빠 이야기부터 전했어요.
어머니,
재석이는 작년에 이어 남부교육청에서 실시한 수학영재에 올해도 합격했어요.
작년에는 재석이 학교에서 재석이 혼자뿐이었는데
올해는 같은 학년 남자아이 한 명도 함께 합격해 기분이 더 좋아요.
지난주 수요일에 개강식을 했는데 영재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곳에 모인 아이들이 하나 같이 참 예뻐 보였어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의젓해 보이기까지 한 어린 새싹들을 위해
지켜보는 동안 마음 속으로 기분 좋은 기도를 했어요.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위해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재석이가 수학영재시험에 합격해
약속대로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과 현금(통장에 저축)을 합해
백 만원에 달하는 선물을 아빠와 엄마로부터 받자
누나인 신애도 욕심이 생겨서인지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하면
최신형 휴대폰으로 바꿔달라고 요구를 해 흔쾌히 약속했어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행복의 성적순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
부모로서 자식 키우는 보람이 더 크다는 걸 어머니도 아실 거예요.

 

 

어머니, 기억나세요?
어린 시절 막내인 제가 학년이 올라가 부회장에 뽑히거나
상장을 받거나 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면 칭찬이 받고 싶어
대문 밖에서부터 큰일이라도 해낸 사람처럼 의기양양해져서
그 날 있었던 일을 큰 소리로 말하며 집안으로 뛰어들었는데
가족 중 누구하나 늘 제 기대에 미치는 칭찬을 해주지 않아
짧은 동안이지만 시무룩해있었던 일...
위로 언니나 오빠가 모두 총명하여 회장, 부회장도 하고 우등상도 받고 했으니
모두들 당연하다 싶었겠지만 어린 나이에 제가 무슨 다짐을 한 줄 아세요?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 아이들 엄마가 된다면
칭찬에는 인색하지 않아야지 하는 거였어요.

 

 

칭찬에 인색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께서 하루는 그러셨어요.
그때가 아마 중학교 1학년 가을쯤이었을 거예요.
성적표를 받아들고 한참을 생각하시던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100점하고 소리 치던 모습 보기 좋았는데 공부하는 게 힘드냐고...
그때 생각했어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자식들 공부 잘하는 게
부모님에게는 자랑할 수 있는 힘이었구나 하는 것을... 

 

 

어머니,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만나는 동반계에 이번에는 불참했어요.
신애가 수학여행 다녀온 바로 다음날이라 피곤과 감기가 겹쳐
1박 2일로 또 다시 집을 떠나야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어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면 저 혼자라도 갔겠지만
주말 낮부터 비도 내리고 이래저래 가고 싶지가 않았어요.
올 봄은 동반계가 만들어진 삼십 여 년 세월동안 가장 적은 사람이 모였대요.
우리 부부와 둘째 언니 부부, 셋째 형부, 고모부 등 빠진 사람이 절반이 되었다니
해마다 한두 집 참석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모임에 음식을 준비한
6촌 언니 두 분의 속상한 마음도 이해가 가요.
그래도 올 가을에 금강산으로 단풍구경 가자는 합의는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대요.
그 소식을 전해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어머니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함께 금강산구경 할 수 있었는데 하는 거였어요.


   
어머니,
지금 사는 집에 이사 들어 올 때 리모델링 해서 들어온 거 아시죠?
벌써 5월이면 만 3년이 되요.
그래서 요즘 집안 분위기를 바꾸느라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쁘고 그래요.
집이 바뀌면 사는 사람도 달라 보인다는 광고문구도 있지만
신랑과 함께 생각을 모으는 시간들이 제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즐거워요.
어머니, 제 사는 모습 예쁘지 않으세요?
잘 살아줘서 고맙고 예쁘다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어요.
어머니, 감사해요.
저를 낳아주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해주셔서......

 

 

그리운 어머니!
제 마음 속에 자리잡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꽃은 
봄날에 피어나는 그 어떤 꽃에도 비유할 수 없이 진한 향기를 퍼트리고 있는데
어머니는 지금 어느 메쯤에 서서 저를 지켜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