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내 인생의 아름다운 1%의 열정)
나는 종종 몸살처럼 번지는 1%의 열정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해 조급해지는 나와 자주 부딪힌다. 견고한 99%를 넘어뜨릴 수도, 불완전한 99%를 완전한 100%로 채워 넣을 수도 있는 1%의 열정, 이것이 늘 문제였다. 이런 기분이 들 땐 나 자신을 상상 속에 풀어놓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즐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느 한적한 시골에 나를 내려놓기도 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어느 이름 모르는 바닷가쯤에도 나를 내려놓기도 한다. 상상을 하는 동안의 나는 마흔의 내 나이를 잊어도 좋고 나를 둘러싼 의무와 책임마저도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상의 터널을 빠져 나올 때쯤이면 문득 문득 내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시켜주는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고맙고 남편의 샤워하는 물소리가 고맙다.
TV를 보다가 만난 드라마 속 어떤 여자가 부러울 때가 더러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접고 훌훌 떠나고 싶은 곳 어디라도 떠날 수 있는 그 여자, 내가 드라마 속 어떤 여자를 동경하는 것은 그 여자가 떠나는 행선지가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아니고 파리에 도착한 그녀가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 세계인의 기억 속에 한번쯤 거닐고 싶은 아름다운 다리로 기억되는 미라보 다리 위를 거니는 장면을 보았을 때도 아니고 혀끝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스위스초콜릿 하나 사 들고 몽블랑 다리를 지나 140미터 높이에 1천360마력으로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대는 제또분수가 있는 레만호의 아름다운 석양을 등에 지고 천천히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떠나고 싶다는 그 순간만큼은 이 생각 저 생각 접고 오직 자신만 생각할 수 있는 밉지 않는 용기가 부러웠을 뿐...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 고마운 행복이라는 걸 잊지 않을 때 스치듯 만난 드라마 속 그 여자는 내게 있어 현재 처한 상황을 쉽게 피하려는 몸짓에 불과해 아무런 매력도 감동도 주지 못하지만 요 며칠처럼 온몸이 어디론가 튀듯 달아나고 싶어 근질거릴 때의 나는 언제 잊혀 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지나간 시절의 풍경과 이름들을 불러내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맞춰 퍼즐 맞추기를 하는 사람처럼 드라마 속 그 여자의 몸짓과 말 한마디를 기억해 낸다. 그 여자를 기억해 내는 동안 입안에서 맴돌다 끝내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살렸다 죽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지 모른다.
며칠째 인지 모른다. 내 자신의 존재마저도 기억할 수 없는 곳으로 사나흘 실종하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휩싸이게 된 것이, 이런 느낌은 일 년에 두 차례 몸살과 함께 찾아오는데 그러한 때의 나는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견고하기 그지없는 것들로부터 조금 느슨해지고 싶다는 생각 속에 둘러싸여 있는 때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차리며 이상신호를 보낸다.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 영토를 확장해나갈 때마다 내 영혼은 구름 위를 걷거나 혹은 물위를 걷는 것처럼 지상에서 두 발을 내리고 안주하지 못한다. 왜 하필 나는 매번 사나흘이라는 경계로 내 자신을 옭아맬까? 사나흘은 어쩌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능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사나흘이라는 시간의 틀을 언젠가는 꼭 이루어내야 하는 꿈처럼 가슴에 품고 살다가 어느 길목에서 복병처럼 숨어있는 그런 기분을 만나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그래도 참기 힘들다 싶으면 일 년에 딱 한 번 남편과 아이들의 이해 속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끝에서 솟아 발끝으로 뻗어 내려오는 동안만 해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꼭꼭 숨어들듯 사나흘 훌쩍 떠났다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집을 나서고 보면 만나고 싶지만 서로의 생활이 바쁘고 사는 거리가 멀어 일년에 한번 만나기기도 힘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기가 일쑤였다. 요 몇 해 동안 내 여행의 행선지는 한번은 부산을 거쳐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고 작년과 재작년은 연거푸 일산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갔다. 어찌 어찌 하다 보니 매번 비행기여행을 하게 되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오기 이전의 세상을 뒤로 물린 채 느림의 미학을 맛보고도 싶고 목적지와 상관없어도 내리고 싶을 때 무작정 내려도 보고 싶지만 결혼한 여자 혼자서 여행한다는 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을 꿈꾼다. 사람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목마른 대지에 기다리는 한줄기 단비처럼 염원하는 것은 힘든 세상사 잠시 잊고자 함이거나 가능하다면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에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의 뿌리를 더듬어 가다보면 모두가 현재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데서 떠남의 미학은 시작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요 며칠 사이 이토록 절실하게 일탈을 꿈꾸게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남편의 말대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많은 부분 완벽 하려고 애쓰는 내 까다로움이 나를 어느 순간 지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람처럼 이 가을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유는 분명 따로 있었다. 친정어머니를 여윈 상실감을 달랠 겨를도 없이 며칠 간격으로 이어진 시아버지 칠순과 추석, 제사,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두 아이 학교 보낸 후 친정어머니 사십 구제를 모시고 있는 합천연호사로 향해야 했던... 살다보면 이런 일 나 아닌 그 누구에게도 찾아드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지만 벗겨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서 가발 값으로 백만 원을 머리에 이고 살고 반찬으로서 조기하나만 예를 들어도 영광굴비가 아니면 아예 식탁에 올릴 수 없는, 여느 노인과 사뭇 다른 시아버지를 위해 매 끼니때마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까 알게 모르게 고민해야했던 시간들, 그런 날들 속에서 수시로 눈 마주쳐 바라보며 시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상황이 이쯤 되니 지난주 수요일, 시아버지가 서울로 돌아가신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 여기저기 이상신호를 나타냄으로서 철저하게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정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열망한다. 내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없으면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출 것 같은 대단한 착각을 하며 나 자신을 묶어 버린 것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계절이 더 깊어지기 전에 TV에서 만난 그 여자처럼 떠나고 싶다는 그 순간만큼은 이 생각 저 생각 접고 오직 나 자신만 생각할 수 있는 용기하나만 가지고 발길 닿는 데로 아주 잠시 떠날 수 있기를...
어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오늘, 내가 일상으로부터 잠시 탈출하고자 함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만은 아니다. 한발 물러서 거울을 바라보듯 정직한 나를 읽어 내리기 위해서이며 떠나기 이전보다 여행 후 돌아온 내 자리에서 더 열정적으로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떠남은 돌아오기 위한 전제라고 그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용기를 내 인생의 아름다운 1%의 열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사는 풍경에서 한 발 물러서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 아름다운 1%의 열정을 나는 매년 습관처럼 기억해내곤 또 떠날 채비를 할지도 모른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아름다울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2004년 11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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