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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그녀가 사는 풍경 엿보기

by 시인촌 2007. 4. 22.

아침을 먹고 영덕을 향해 길을 나서던 도중 영천에 있는 와촌 휴게소에 들렀다. 딸과 아들녀석은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먹을 것을 사 달라며 차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휴게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휴게소에서 나와 이십분 정도 영덕을 향해 달렸을까?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들로 이미 배가 부른 아이들은 갑자기 대개 먹을 생각이 없다며 1박을 하기로 한 경주로 가자고 졸랐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얼마 안 남았으니 처음 계획대로 영덕에 먼저 들르자고 할 만도 하건만 흔쾌히 경주로 방향을 틀었다. 집을 나설 때 처음부터 목적지를 경주로 잡았다면 30분은 절약되었겠지만 누구하나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불평 없이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만난 풍경, 이를테면 작은 기찻길 앞에서 만난 우선 멈춤 표시와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촌락들을 둘러쌓고 있는 풍경 이야기로 "벌써 경주야..." 할 정도로 대화가 있는 여행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경주에 도착하니 14일 그 날이 술과 떡 잔치 첫날이라 황성공원 일대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다. 술과 떡 잔치가 열린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온 남편과 나는 눈앞에 보이는 곳부터 먼저 들르자고 했지만 술과 떡 잔치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 두 아이의 냉정한 반응에 눈앞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보고도 지나쳐야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로 여행하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몇 박을 하든 어디를 가든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을 여행지로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올해 중3인 딸과 초등6학년인 아들은 나름대로 컸다고 여행지를 선택할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집을 나설 때 영덕에 들러 대개도 먹고 바닷바람도 쐬고 복사꽃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차발전소도 들르면 좋겠다싶어 영덕으로 길을 잡았지만 영덕은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과 통일전망대를 오고가며 몇 번이고 여행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에겐 신라의 궁궐을 의미하는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있는 특급호텔인 ‘라궁’을 서둘러 만나고 싶다는 생각보다 덜 매력적이었는지 포기한 여행지에 대한 미련은 없어 보였다. 

 

3월말에 개장을 했다는 ‘신라밀레니엄파크’는 수도 없이 들른 보문단지에 들어서도 안내간판 하나 제대로 없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엑스포공원으로 들어설 때까지 이상하게 우리가 찾던 신라밀레니엄파크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근처 밖에 만들 장소가 없을 텐데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형편없이 변한 엑스포공원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엑스포공원에서 춤 공연도 감상하고 말도 타고 이것저것 구경거리며 관광상품을 샀던 기억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고 남편과 나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그곳을 형편없는 모습으로 방치한 관계자들의 직무유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내 것이 아니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병처럼 확산되어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더러 잊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슴에 묻은 채  신라밀레니엄파크로 이동했다. 

 

신라밀레니엄파크는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심어둔 나무나 잔디 같은 건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제자리를 찾을 테니 그렇다하더라도 족욕탕과 석빙고등 아직도 공사중이거나 보수중인 곳이 더러 있다는 사실은 관광 도중 스치듯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어른 2만원, 청소년 1만5천원, 어린이 1만원이라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를 그냥 모른 채 하기에는 개장시기가 너무 빠른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우리가족이 들른 14일 그 날은 50% 특별할인 기간이라 개인적으로 입장료가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행을 하다가 종종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휴식과 연결된 여행이 음식뿐만 아니라 테마가 있는 문화로까지 발전한다면 참 좋겠다싶었는데 그런 면에서 신라밀레니엄파크는 박수를 보낼 만했다. 시간대별로 공연장을 바꿔가며 공연하는 6개의 공연(청해진의 상인, 호낭자의 사랑, 화랑도의 도, 천궤의 비밀, 천년의 북소리, 여왕의 눈물)은 신라천년의 감동과 스펙터클을 전하는데 손색이 없었으며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 따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입장료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신라밀레니엄파크는 크게 역사와 영광(조각분수, 처용폭포, 화청지,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도전과 모험(비말지, 장보고카페, 장보고공연장, 송림길, 야외공연장, 석빙고, 족욕장), 문예체험마을(인형공방, 전통미술공방, 목공방 / 담목원, 장유공방, 한옥체험장, 칠기 및 칠보공방, 유리공방, 양조장, 염색공방, 금속공방, 토우공방 / 토우공원, 의상대여소, 가람폭포, 물레방아, 설화공원) 삼국사기 옥사조 잡지편의 내용과 출토 등을 근거로 고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신라시대 가옥들을 추정 복원한 천년고도(성골가옥, 진골가옥, 6두품가옥, 5두품가옥, 4두품가옥, 민가, 산채) 그리고 화랑도량(마상무예 스턴트로 구성된 화랑도 공연을 하는 화랑공연장), 전통형 특급호텔로서 16채의 독립 가옥과 노천온천으로 구성된 ‘라궁’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우리가 간 그 날 숙박을 하고자 했던 호텔 라궁이 오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석식과 조식 두끼를 합해 1인당 16만원(세금별도)한다는 라궁이 4월말쯤 오픈계획이라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두 아이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안 돼...를 질러댔다.

 

유리공방에서 남편으로부터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재질이 유리라는 걸 생각하면 삼만 오천원은 다소 비싸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하나뿐인 디자인이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에 어울려? 괜찮은 것 같아?... 이에 질세라 딸아이도 아빠로부터 선물 받은 목걸이와 핸드폰 줄을 거울에 비추고는 괜찮지? 잘 샀지? 라며 싱글벙글.... 옆에서 두 여자의 반응을 지켜보던 남편은 귀여워 죽겠다는 시늉을 감추지 못하고 예뻐, 멋져...를 꽃향기처럼 날리고, 아들녀석은 입구에 위치한 상품코너에서 아빠로부터 일찌감치 모자를 선물 받았기에 아무것도 사지 않은 아빠가 신경 쓰였던지 아빠만 선물이 없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신라밀레니엄파크에 머무는 동안 남편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어울리는 것이 있으면 선물해야겠다며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곳을 나올 때까지 마음에 드는걸 발견하지 못해 결국 남편만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 되고 말았다.

 

신라밀레니엄파크를 나와 하야트 호텔 주변에 있는 ATV(4륜 바이크)를 빌려주는 곳으로 갔다. 한시간에 2만5천원 하는 4륜 바이크 두 대를 빌려 아들녀석과 남편, 딸과 내가 한 팀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4륜 오토바이의 장점이자 특징을 살려 비포장도로와 자갈밭, 모래밭, 웅덩이 등을 가리지 않고 질주했다. 주행 방법이 간단해 남녀노소 누구나 간단한 안전교육만 받으면 되는 4륜 바이크는 두 아이를 짧은 시간동안 빠져들게 했다. 그 별난 재미에  푹 빠진 가족들은 차가 달리는 도로까지 침범했다가 근처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에게 들켜 다시 근처 강가로 나가 자갈밭과 물, 모래밭, 웅덩이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렸다. 거침없이 달렸다고 해봐야 시속 50km에도 못 미치는 속도였지만 자동차와 달리 사방이 뚫려 있는 4륜 바이크는 몸으로 느끼는 속도가 자동차 100km에 버금갈 정도로 스릴(thrill) 넘쳤다.

 

비포장 도로를 한시간 남짓 질주한 탓인지 아들녀석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목이 아프다며 힘든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보문단지 내에 있는 호텔과 콘도에 수 차례 묵으면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와 평소 가고싶은 곳들을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는 가족들은 재석이 몸 상태도 그렇고 더군다나 영덕대개 먹을 생각이 없다면 굳이 익숙한 경주에서 하룻밤 묵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만장일치로 집이 있는 대구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돌아가는 길, 첨성대 부근을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 군락지에서 꽃보다 더 어여쁜 마음을 사진 속에 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관광도시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족 모두 경주는 관광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길 안내 서비스는 절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혹여 라도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 경주시관계자와 경주시민이 있다면 신라 천년의 사직 분포가 넓은 경주를 길 안내표지판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다시 찾고싶은 경주를 오고싶지 않은 도시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에 책임감과 함께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 날밤, 내 삶의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저 얻어지는 눈부심은 없다. 눈물나도록 고맙고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눈부심 뒤에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과 즐거운 마음과 함께 누리고자 하는 감사한 마음이 숨쉬고 있다라고......’

 

 


2007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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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토요일, 16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가족 모두 제주로 여행하려고 했던 계획이 원하는 날짜에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한 이유로 여행지를 경주와 동해안쪽으로 수정했다가 아이들의 비협조로 4월 14일 토요일 하루동안 경주에서 놀고 밤 시간대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계획이 하루로 단축된 게 마음에 걸렸던지 다음날 남편은 둘만의 데이트 신청을 했다. 아이들 역시 4월말과 5월초에 중간고사시험이 있는 관계로 집에서 공부하고 있을 테니 맛있는 점심시켜 먹을 돈만 많이 주고 가라며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떠나라고 자꾸만 부추겼다. 덕분에 가족 모두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 새롭다는 생각마저 드는 가창 허브힐즈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가창허브힐즈는 구 냉천자연랜드를 새롭게 단장한 곳이다. 아이들과 동행을 할 때면 아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가 일쑤여서 느긋한 산책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단둘이 나오니 메타쉐콰이어 침엽교목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거리와 색색의 나무와 각종 허브꽃들이 유혹하는 길을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처럼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카페에 들러 차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나이도 잊은 채 쉴 새 없이 사진기를 눌러대고... 맛있는 허브비빔밥도 먹고 벨리댄스도 감상하고 동물들도 보고 솜사탕도 먹고 그렇게 둘이서 몇 시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놀다 돌아오는 길에 수성유원지에 들렀다.

 

선착장이 있는 건너편은 밤이면 포장마차가 불야성을 이루던 곳이었는데 언제 철거가 되었는지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있어 너무 좋았다. 허브힐즈에서 나오기 전에 솜사탕을 좋아하는 나에게 솜사탕 하나를 사서 건 내준 남편은 수성유원지에서는 꼬마 빵을 사서는 내 입에 넣어주었다. 마치 엄마가 자식이 언제 다 먹는지 지켜보면서 제때 쏙 먹여주는 것처럼... 시간 날 때마다 야외로 나와서 점심도 먹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 되겠다는 남편은 분위기 좋은 곳이나 고급음식점을 단둘이 갈 때 한번씩 던지는 말,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부부가 아닌 연인처럼 보일 거야..."라며 결혼 17년 차로 살아가고 있는 내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눈빛으로 오래도록 바라봐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진정 가슴으로 살고 있음을 느끼며 오직 내 목소리가 남편에게만 들릴 정도로 소곤거렸다. "오늘 행복했어... 고마워... 사랑해......"

 

그 날밤, 내 삶의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둘이라서 더 행복한, 넷이라서 더 고귀한,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로 서로에게 아름다운 영향 끼치며 살아가기를......’

 

 


 2007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