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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가끔은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아.

by 시인촌 2011. 6. 8.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밤 1시 전후에 잠들어 새벽 5시, 늦어도 5시 40분이면 일어나고

네 식구에 아침 식사만 매번 세 번 차려야 하는 내가

아침 7시에 음악을 듣고 이병률의 산문집인 ‘끌림’을 읽다니...

 

 

어제 나흘간의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덕분에

아들의 등교를 책임지는 남편도 모처럼의 단잠에 깨어날 줄 모르고

덩달아 이른 아침부터 깨어나 아는 척 하는 나래(암컷인 진돗개 이름)도

오늘은 기척이 없다.

 

 

점심식사로 남편과 참마에 자연산 상황버섯을 곁들인 삼계탕을 먹었는데

혈액순환이 잘 된다며 딱 반잔씩만 하자는 남편의 권유로 인삼주를 마셨다.

일과가 끝나지 않은 남편 역시 말대로 딱 반잔만 마셨다.

너무 오랜만에 마신 탓도 있지만 워낙 술에 약한 체질이라 그런지

식당을 나오기도 전에 얼굴에 붉은 노을이 피어오른다.

 

 

그저께 저녁 갑작스레 브레이크 파열이 된 남편의 차는

부품을 구하지 못해 정비고 신세를 지고

남편은 모든 출장 업무를 금요일로 미루었다.

내 차로 이동해도 무방하나 거래처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집 건물 1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모여든다.

 

 

매번은 아니지만 남편은 아내인 나와 좋은 음식점이나 멋진 곳으로 데이트를 갈 때면

우린 불륜이야 하고 진담 같은 농담을 하곤 한다.

바라보는 눈빛도 따뜻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는 우리 부부의 장점이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종 뜨거운 의심의 눈초리를 발사하게 하지만

서로에게 여전히 청춘일 수 있는 늙지 않는 감정을 지닌 것에 대해 행복 할 따름이다.

 

 

나른하다며 한 시간만 쉬었다 사무실로 가겠다는 남편은 돌아오자마자 안방 침대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십분 남짓 쉬는가 싶더니 몇 분 간격으로 연신 전화벨이 울린다.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31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날씨라 덥다며 속옷차림이다.

옥상에 널어 둔 빨래를 걷으러 가는 나와 딱 마주 친 남편,

그만 나의 장난기가 발동을 하고 말았다.

입안에 굴러다니는 얼음을 다짜고짜 남편의 가슴에 대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차가움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시원해서 좋다며 은근슬쩍 몸을 밀착시킨다.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영영 모르고 지나칠 감정들...

삽시간에 밀고 당기는 자석처럼 그렇게 우린 서로를 원했다.

한낮의 몸 사랑은 은밀하지는 않았지만 아카시향기처럼 달짝지근하고

영혼이 배부른 자의 여유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았다.

 

 

가끔은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아.

.

.

.

문득 이병률의 산문집(끌림) 중에서

이야기. 열아홉에 나오는 ‘사랑하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중략)

한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세상을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기적을

당신은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