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종갓집은 덩그러니 빈집만 남아 있지만,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에도 몇 그루의 나무와 야생화, 알뿌리 식물까지 용케도 살아 매년 꽃을 피운다. 부산에 사는 외아들인 오빠와 고향 근처 읍내에 사는 둘째 언니가 가끔 들러 청소도 하고 풀도 뽑고 나무도 손질한 덕분에 누군가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오 남매 모두 고향 집에 모였다.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니 19명 대식구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합천 한우와 흑돼지 잔치를 벌였다. 옆집에 사는 5촌 아재도 부르니 그야말로 어머니가 떠난 종갓집이 모처럼 활기차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저녁이 되자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동네에서 일찍이 기름보일러를 놓은 친정집은 식구가 없다는 이유로 작은방에 보일러를 놓지 않았다. 대식구가 모이니 묵혀둔 작은방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5년째 제대로 된 열기라곤 품은 적 없는 방은 한참 동안 마른 장작을 삼킨 후에야 서서히 데워졌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속에 장작 몇 개 더 밀어 넣고 일어서려는데 축담 위 쌓아놓은 신문에 눈길이 멎었다. 누렇게 변한 종이는 한 장 한 장 떼어 낼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불쏘시개로 사용되는 신문지 사이로 세월을 넘나드는 추억이 길을 내며 바람처럼 지나간다. 일순간 마음이 복잡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쌓아둔 신문지에서 누렇게 변한 뭉치가 미끄러지듯이 쑥 빠져나와 발 위로 뚝 떨어진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주인 없는 집에서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고 햇볕에 온몸을 내어주면서도 묵언수행하는 생을 산 때문일까 날아갈 듯 가볍다. 반으로 접힌 걸 펼쳐보니 옛날 방식으로 엮은 책이다. 겉표지에는 漢字 天字文(한자 천자문) 丁巳年 二月 十二日(정사년 이월 십이일)이 적혀 있다. 선 채로 책장을 넘겨 대충 훑어보니 漢字 天字文(한자 천자문), 三綱五倫(삼강오륜), 事恩敬(사은경), 難字 復習記(난자 복습기)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한문 아래 한글로 적어두었다. 삼십 년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 종종 먹을 갈고 붓으로 글을 쓰시던 모습을 옆에서 보아온 나는 단박에 아버지 글씨체라는 걸 알았다.
종갓집 맏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이름보다 ‘응오’라는 호로 더 많이 불렸고 오랜 기간 동네 이장 일을 도맡아 하셨다. 필체도 문장도 좋았던 아버지께서는 제문을 짓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 부탁하면 가리지 않고 대신 써주곤 하셨다. 그 시절,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일은 숙식 제공은 기본이고 일 년 새경을 받아 가는 머슴(일꾼)이 도맡아 했다. 60~70년대 가난한 집 가장은 식구들을 위해 남의집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80년대 들어서자 산업화의 붐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 갔다. 그 때문에 언젠가부터 우리 집도 일 년 새경을 받고 일하는 머슴을 더는 구할 수 없었다.
숱을 넣어 다림질하던 그 시절, 좋다는 약은 두말할 것도 없고 다리미를 곱게 갈아서 먹으면 위암에 좋다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주 적은 양이지만 여러 날 만에 고운 가루로 빻아 아버지께 드렸다. 쇠를 가루로 부수느라 팔이 아팠을 텐데도 아버지와 자식들 앞에서는 힘든 내색 한번 없으셨던 어머니는 하늘이 낸다는 종부답게 모든 일에 의연했고 부지런하셨고 반듯했다. 어머니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1년을 넘기고 두 달을 더 사셨다. 막내인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78년 어느 봄날,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고생만 시킨 아내와 중고등학생인 어린 나와 오빠를 포함한 오 남매, 허리가 구부러져 일상이 불편한 칠십 중반의 늙으신 어머니를 두고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간 글에서 매 순간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듯 하여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인지 조바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듯하게 써 내려간 첫날과 달리 날이 갈수록 글자 크기가 눈에 띄게 줄고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도 일정치가 않다. 아버지의 필사본(筆寫本)을 찾은 이후, 괜스레 마음이 복잡하거나 불편한 날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진다.
어쩌다 고향 집에 가는 날이면 보고픈 어머니가 진작부터 동네 어귀에 마중 나와 손을 흔들 것만 같아 멀리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 먼저 달려간다. 꿈결에서라도 만나 보고픈 그리운 어머니와 아버지, 이승과 저승 사이가 너무 멀어 간절한 나의 기도는 닿지도 못하고 잠들지 못한 마음에 세월을 넘나드는 추억이 바람처럼 길을 내며 지나간다.
2010년 10월 - 喜也 李姬淑
2021년 10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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