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습관처럼 발신자번호를 확인하고 받는다.
걸려오는 전화 중 절반 이상이 아이들 과외 할 생각 없냐는 학원전화나 좋은 땅이나 건물이 있다는 부동산전화,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바꾸라는 전화 그 밖에 카드회사와 보험회사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더러 설문협조를 요하는 전화와 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보이스피싱도 있지만
첫마디에 고객님이나 사모님으로 시작하면 대꾸도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어느 날 네다섯 번 울리다가 받지 않으면 끊어지는 전화와 달리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전화는 오래도록 앙탈을 부렸다.
하던 집안일을 멈추고 못 이기는 척 수화기를 들어 말문을 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불러도 대답이 없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끊지 말라는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너무나 달라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었던 사람...
살면서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 없어 그런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
아는 이를 통해서 우연히 내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그 남자는
이십년도 훨씬 지난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꼭 한 번은 봐야겠다는 그 남자를 수많은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카페에서 만났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공한 그룹에 속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멋있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남짓 되는 만남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고 나는 무엇엔가 쫒기는 사람처럼 허둥댔다.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내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상대에게 들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까칠하다는 그 사람의 말에 대꾸도 않은 채 일어서는데
“앉아...”라는 말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내 팔을 잡아당겼다.
당기는 힘이 어찌나 세던지 하마터면 안길 수밖에 없는 민망한 상황이 일어날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돌아서는데 어느새 눈앞에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마주 보고 서 있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일까 미처 물러나기도 전에
무엇인가 이마 위를 살포시 앉았다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땡이 되고
그 역시도 돌발 상황에 놀랐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애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나였다.
그 날 이후 두 번 다시는 그 사람과 마주 한 적은 없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길을 걷다 우연이라도 그 사람과 마주친다 해도
그 날에 일어난 해프닝에 대해서는 끝까지 모른 채 할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참 별일도 다 있다 싶은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일 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피식 웃음부터난다.
웃음이 멈춘 자리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철없는 말이
밀려왔다 쓸려가는 풍경마냥 왈칵 피었다 사라진다.
속물이거나 순진하거나......
2010년 07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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