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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배용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여우다방’에 대한 리뷰(review)

by 시인촌 2024. 8. 7.

여우다방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첫 잎, 두 잎, 세 잎, 네 잎, 끝잎으로 나눈 것도 돋보인다.

읽기도 전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어 시집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가 가진 즐거움과 상상력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어디까지 확대되는지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이 지점이 바로 제목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이유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기억 속 아버지를 반추하는 시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첫 잎 의자그릇이 가장 진솔하게 와닿는다.

첫 잎 의자중에서 세상 모든 아버지는 거룩한 종교다

세상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낸 아버지의 노고가

"가족을 푹신하게 앉히던 아버지의 걸음걸이를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었다

 

그릇중에서 아버지는 인정에 고픈 내게 그릇이 돼라 하셨다 (중략)

세상을 담아낸다는 것은 힘들고 고독한 일이라서 누군가를 담기는커녕 (중략)

느지막이 아비가 되어 보니 필요한 건 담금질뿐이었다"

 

생존을 위해 오늘도 수없는 담금질을 하는 이 세상 모든 어버이에게

수고했다는, 잘하고 있다는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 싶다.

시인의 시에 감정이입이 되어 공감했기에 가능한 반응이다.

이쯤에서 나는 문학의 순기능을 해낸 시인의 따뜻한 생각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삶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추억이 어떻고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독자가 공감할 수 없다면 아무리 잘 쓴 시라도 감동을 줄 수 없는데,

배용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여우다방속 시들은 하나같이 술술 잘 읽어져 무엇보다 좋았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을 들여다보는 맛이 제법 깊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읽고 생각에 빠졌다.

커피는 진작 다 마셨는데 그때 그 분위기가 좋아서 쉬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짧은 시간에 들여 다 본 느낌이다.

80편의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상이 힘든 시절을 자식과 가족을 위해 묵묵하게 희생하신

우리들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여서 더 애잔하고 먹먹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중학교 2학년 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종갓집 맏종부로 너무 많은 짐을 지느라 고생 많으셨던 어머니가 오버랩돼서 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