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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읖조림(쉰 둘)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4. 29.

눈을 들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잎이 
부는 바람에 꽃비인지 눈발인지 분간조차 할 사이도 없이 
사랑스런 몸짓으로 왈츠를 추고 
꽃 진 자리마다 비우면 다시 채우지는 희망처럼 
파릇한 잎이 소리 없이 가지마다 푸른 성을 짓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봄이다. 
아름답다는 건 내게 있어 때때로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먹하게 하고 입을 다물게 하고 호흡마저 가파르게 한다. 

아름다운 봄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끓어오르고 뜨거워지는 나는 
문득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음을 새삼 느끼며 
작은 입술을 달싹거려 누구에게로 무엇에게로 구분 짓지 않아도 좋을 
말 한마디를 속삭이듯 건 낸다. 
고마워 라고... 

좋은 말은 향기가 난다고 했던가... 
방금 전 내 입술로 속삭인 고마워 라는 말 한마디는 
허공을 날아 다시 내게로 되돌아온다. 
마치 사랑은 되돌아오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물겹도록 고맙다는 말은 
비단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절로 오는 봄 눈 감고 있어도 말이 되어 전해지는 이 느낌, 
지금 나는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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