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 둔 베란다 창으로 들려오는 비 소리가 봄날, 사랑채에서 나는 뽕잎을 갉아대는 어린 누에의 성장소리와도 비슷하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워 도저히 만질 수 없었던 그 어린것들의 꼼지락거림이 죽어 아름다운 비단으로 환생한다는 걸 안 뒤로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내리는 비 소리를 듣는 날이면 나도 몰래 온 몸을 누에고치처럼 돌돌 말고는 생각 속에 집 짓고 사는 것들과 조우(遭遇)했다. 비 내리는 오늘, 눈을 감고 어린 시절 듣던 누에의 성장소리를 기억해내야겠다. 부르기만 해도 속눈썹을 젖게 하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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