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즈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 은행에 도착했다. 내 통장에서 얼마의 돈을 찾을 목적도 있었지만 용돈의 일부를 각자의 통장에 저축해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을 받아서이기도 하다.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고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두 아이는 매주 내게서 받는 용돈은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어릴 때부터 문화와 친숙해야한다는 내 생각 덕분에 두 아이는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한 특별비 명목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별도의 용돈을 더 받는다. 그밖에 학업성적에 있어 일등 했거나 공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상을 받아왔을 때와 기쁨을 나누는 정도에서 그치기엔 아까울 정도로 칭찬해주고 싶은 행동을 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칭찬한다는 의미와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부모인 나와 남편은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00,000원의 돈을 각각 따로 주기도 한다.
두 해전부터 한 달에 한두 번 엄마, 아빠가 동반하지 않아도 받은 용돈 중 일부를 가지고 시내로 볼거리를 찾아 나서는 두 아이는 읽고싶은 책도 사고 영화도 보고 축하 해주고싶은 사람의 생일선물도 사고 도서관이며 서점, 식당, 공원 등을 두루 다니며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하루 땡볕에 나날이 익어 가는 곡식처럼 생각도 쑥쑥 키도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쩌면 둘만의 나들이가 경제를 익히는 기초가 되어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하곤 한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는 한푼도 벌지 못하면서 쓰는 것만 배우는 것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김 하는 것과 지출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도 경제를 알아 가는 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모은 돈을 계획에 의해 사용하고 남은 돈 중에서 얼마를 남기고는 매달 적게는 일 만원에서 많게는 십 만원에 달하는 돈을 내게 저축해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은 매번 액수가 불어나는 통장을 바라보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비 온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혹여 하는 생각에 접는 우산을 준비해서 거리를 걸을 때만해도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늘은 군데군데 먹구름이 끼여 있어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를 기세를 하고 있었지만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닿는 얼굴은 청량하기 그지없어 산들바람에 걸음마저 사뿐사뿐 날개를 단 듯했다. 언젠가부터 도장을 사용하지 않고 통장만으로 입, 출금을 하는 나는 은행창구를 직접 이용하지 않고 은행 한쪽에 마련된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를 사용한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입, 출금이 다 되는 기계 앞은 세 사람이 서 있어 내 차례가 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입금은 되지 않지만 출금이 되는 기계 중 비어있는 기계가 있음을 발견한 나는 우산을 기계 위에 올려놓고 얼마의 돈을 찾았다. 은행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 내 등뒤에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순간 나로 하여금 우산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잊게 하고 얼른 기계 앞에서 떠나야한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아이들이 맡긴 돈을 입금하고 돌아서려는데 잊고 있었던 우산생각이나 서 있던 몸을 바로 돌려 우산을 올려놓았던 기계로 다가가니 불과 2∼3분전에 있던 내 우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너무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가 막혀 몇 초간 멍하니 서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테 물어보았다. 불과 일분 전까지만 해도 분홍색 우산이 있더라는 말을 두 사람에게서 들었지만 어디에도 내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참 씁쓸했다. 우산가격으로 치자면 2만원정도라 우리 식구 간식 한 번 먹은 걸로 하면 그만이지만 지난달에 산 것이라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이 깨끗하고 더구나 손에 뭔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디자인, 색상, 질감이 우산인지 양산인지 얼른 구별되지 않아 하나를 가지고도 상황에 따라서 우산으로도 양산으로도 쓸 수 있기에 마음에 들어했던 물건이다.
은행 문을 나서는데 자기물건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날리는 비가 굵은 빗줄기로 변하기 전에 뛰어야 하는데 뛰고 싶지가 않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오는데 내 고집에 하늘도 질렸는지 햇살마저 간간이 드러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도 그 생각에서 쉬 빠져 나오지 못한 내 머리 속 구조는 오래된 기억까지 하나 둘 들추어내어 불편한 심기를 더 건드렸다. 남의 물건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과 그것이 부끄러운 행동인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나를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 살고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남편의 교통수단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한몫 거들었다. 먼 곳은 자동차로, 2km 이내인 가까운 곳은 오토바이로, 점심 식사를 하러 집으로 올 때는 사무실과 집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자전거로 오는 일이 더러 있었다. 아주 더운 여름 날씨나 추운 겨울은 자동차로 움직였지만 활동하기 좋은 봄과 가을은 세 종류의 교통수단을 번갈아 가며 이용했는데 자전거는 운동이 된다는 점에서, 오토바이는 차가 밀리는 시내에서는 자동차보다 더 용이하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차고 문을 열어둔 이유가 도둑을 맞을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다면 더 이상 무어라 할말이 없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다. 어떻게 타인의 물건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훔쳐 가는지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 사는 집을 리모델링(Remodeling)해서 이사와 지금까지 사는 동안 주소는 맞는데 별의별 고지서에 연체료는 기본이고 돈 떼먹고 달아난 얼굴 없는 고지서들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확인해본 결과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도 산 적이 없는, 그야말로 우리 집 주소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막히게 했다. 능력이 없으면 카드를 사용하지 말아야지 왜 남의 집 주소로 등록을 하는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작정을 하고 한 행동은 엄연히 범죄라는 말까지 하고 싶은 나는 확인하지 않고 살지도 않는 집으로 무작정 우편물을 발송하는 오류를 범하는 카드사나 은행 그 밖의 여러 관련 기관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숱하게 날아온 고지서에 쓰여진 전화번호로 그런 사람이 없으니 확인하고 보내지 말라는 말을 수 차례 전화로 연락했지만 절반은 여전히 변함 없이 날아오고 있다. 물건을 살 때도 현금이나 일시불로 사는 나는 아무데나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이고 보니 우리가족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이름으로 날아오는 별의별 고지서는 신문 속에 끼여 날아오는 온갖 유인물보다 더 싫은 대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에 몇 번은 잊지 않고 날아들어 내 심사를 불편하게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자꾸만 날아드는 우편물을 감당키 어려워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수십 만원의 연체료가 미납되었다는 독촉용 고지서였다. 이동통신사로 전화를 걸어 그런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니 확인해서 조치해 달라고 부탁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날아드는 건 마찬가지라 생각 끝에 우편 속에 들어있는 전화번호로 남편이 전화를 걸었다. 원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우편물을 열어보면 안 되지만 이동통신사에 연락을 취해도 계속 날아드는 우편물 때문에 이렇게 전화를 했다며 주소를 확인하시고 정정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랬는데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대뜸 내 마음인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도리어 화를 버럭 내며 끊어 정도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지 못하는 남편은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달부터 그 고지서는 날아들지 않았지만 공공기관인 한국전력에서는 아직도 다른 이의 명의로 된 고지서가 여전히 우리 집으로 발급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 집 주소와 전혀 무관한 번지의 전기요금을 자동이체로 내는 사람의 것을,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깨끗하든 복잡하든 간에 왜 자신의 흔적을 아무데나 버리고 다니는 것일까? 그리고 공공기관이나 각종 기관에서는 왜 확인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전화를 해주는 우리부부처럼 불편을 겪거나 어떤 의미에서든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 확인작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근무태만에 속할텐데... 아무튼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궁금증을 일게 하는 요지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활곳곳에서 복병처럼 숨어 있는 비 양심과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맞닥트릴지 모른다.
예로 들은 위 사례처럼 자신의 양심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때로는 소수의 행동과 말이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 양심은 교통법규를 어긴다거나 각자의 자리를 이탈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개인의 비 양심이 부조리와 부패를 양산하고 다수의 정직한 사람들을 아픔과 슬픔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고 따스하다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부정적인 요소가 아닌 긍정적인 생각들 속에서 싹 트고 열매 맺는다는 걸 믿고 있기에... 오늘 나는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뭐든 쉽게 생각하는 것이 양심을 아무데나 버리고 다니는 시작이 아닌지 그리고 자신의 양심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향기를 내뿜으며 그대 주위를 맴도는지 각자 지금 서 있는 배경에서 한번쯤은 점검해 보아야 할 일이라고, 이 말은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이기적인 것에 익숙해져 가는 내 행동이나 생각을 꾸짖을 때도 해당되는 말이 되겠지만 말이다.
2005년 08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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