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과 느낌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는 여자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8. 18.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에 대한 궁금증은 내 자신마저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와 대면하게 하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그런 선상에서 나는 세상과 사람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풍경이 되는 나무와 심지어 회색콘크리트 건물에게까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선상에서만은 까다로울 만큼 내 왕성한 호기심을 애써 모른 채 한다. 생각이 그러하니 자투리 시간이 생겨도 며칠이고 웹 상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커녕 온라인 접속을 했다 하더라도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내 공간에 글만 덩그러니 올려놓고 마우스 한 번이면 별의 별 세상이 다 펼쳐지는 온라인 세상에서 빠져나오기가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라는 걸 실천으로 증명해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날은 열 곳 남짓한 다른 이의 블로그에 습관처럼 거의 같은 경로로 산책하는 걸 즐긴다. 그러다 한 달에 두세 번 내 시선이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은 이들의 블로그로까지 확대하는데 이유는 다양한 연령 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접하다보면 내가 알지 못했거나 놓쳐버린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의 정신세계, 즉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내용의 글을 쓰는지 타인의 생각과 느낌이 궁금해서이다.

 

이런 이유로 며칠 전 우연히 발길 닿은 어느 블로그에서 ‘살아가는 여자’에 대한 글을 읽었다. "‘생활하는 아줌마’들은 많지만 ‘살아가는 여자’는 거의 극소수이다."라고 말한 글쓴이의 생각과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난 글을 읽어 내리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마치 내 자신이 평소 느끼는 생각들을 정리해놓은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켜 짧은 시간에 수필 한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오늘 나는 좀 색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자와 생활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OECD 국가 중 이혼률이 2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이혼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높아져만 가는 원인과 결부시켜... 이야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평소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써 내려감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팽배가  ‘함께보다는 홀로’에 익숙한 사람들을 양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생각을 경계하고자 할 뿐 특정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던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기억하고 읽어내려 주기를 바란다. 

 

이런 내 시각에서 보면 생활하는 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살아가는 여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고 있다고 봐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생활한다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홀로가 아닌 함께 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모습들이 익숙한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왠지 손해보는 듯한 생각을 명쾌하게 떨쳐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보다 점점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은 결국 함께 보다 홀로서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더 늘게 하는 요인이 되곤 하는데 여기서 나는 사회적, 가정적, 개인적 측면에서 이혼이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파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밝혀둔다.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각자 다를 것이고 이혼을 하게끔 동기를 부여한 원인제공자도 분명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손뼉도 두 손이 마주칠 때 소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혼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나 결과도 결국 쌍방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을 뿐 이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혼한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게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늘의 제목인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는 여자’ 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면 적어도 OECD 국가 중 이혼률이 2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있다.

 

솔직히 나는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는 여자 ’둘 다 느끼며 챙기는 여자가 좋다. 나라는 여자는 갈증을 느끼지 않을 만큼 그 둘을 내 나름대로 잘 챙기며 산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또한 나만의 세계에 빠져 느끼는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는 여자’ 사이에서 별 무리 없이 지금껏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믿는다. 내 안에 숨쉬는 아름다운 열정이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도록 도와줄 것이므로...

 

아주 오래 전부터 유별나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던 나는 아줌마는 나와는 먼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줌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푸근하다는 생각보다 늘어졌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싫기도 했지만 아줌마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을 보면 부끄러움, 예의, 자존심 같은 것들이 어느 순간 상실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데 놀라곤 한다. 이 말은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남성들 또한 아저씨라는 한계를 스스로 벗지 못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아줌마, 아저씨가 주는 어감이 비생산적이라든가 나태해지기 쉽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목적 의식 없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부정적인 모습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분명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 

 

진정한 아름다움은 각자의 이름에 붙여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려고 노력할 때 더 빛을 발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요즘의 여성들은 함께 보다는 홀로에 더 익숙해져 있는 이기심으로 인해 ‘생활하는 여자는 점점 줄어들고 살아가는 여자는 셀 수 없이 많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알뜰살뜰 살림을 잘하는 것도, 내조를 잘하는 것도, 경제적인 활동을 해서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적극적이거나 긍정적이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열망하고 요구하는 것들이 점점 영토를 확장해 가는 담쟁이 넝쿨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져만 가는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발상 속에 둘러 쌓인 모습, 분명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모습이다. 

 

모두들 커리어우먼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편과 자식과 엄연히 분리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고 자신을 위해서 살기를 바라는 여성이라면 먼저 자신이 선택한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부터 익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커져버린 이기심들을 조금 들어내고 그 자리에 함께 라는 덕목을 채워 주어진 삶을 뜨겁게 껴안는다면 살림, 육아, 교육 등 살아가는 많은 부분에 있어 달인수준은 아니더라도 배우며 깨치는 즐거움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지를 알고 자기개발에 끝없이 투자하는 깨어있는 여성으로 남을 준비를 그 누군가에 의한 자극에서가 아닌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는 여자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으로 남을 때,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지고 첨단화해 가는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끝으로 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생활하는 여자와 살아가고 있는 여자’를 적절히 융화시킨 여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내 나름대로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1. 현재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업주부일지라도 
   언제든 직업일선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

 

2. 자신이 둘러 쌓인 배경들을 사랑하면서도 끝내 꿈을 잃지 않는 여자

 

3.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알면서 요구할 줄도 아는 여자

 

4. 대화의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해서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줄 아는 여자
 
5. 써야 할 때와 아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여자
 
6. 나이가 들어도 다른 이의 눈에 여전히 여자로 비춰지는 걸 즐거워하며
   아름다운 성숙을 위한 투자를 내, 외적으로 게을리 하지 않는 여자

 

7.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한 줄도 알고 행동으로 옮길 줄도 알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즐거워 할 줄 아는 여자

 

9. 그 누군가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여 들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여자

 

10.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아내, 엄마, 딸, 며느리 등)에 충실하면서도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변신이 가능한 여자

 

11. 여자이면서도 사람이기를 고집하는 여자

 

12. 언제나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만날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여자

 

13. 생각이 깨어있는 여자

 

 

 

 


2005년 08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