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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말에 대한 물음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삼십대 후반을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더러 생각하고 반문하는 몇 개의 의문부호 중 어쩌면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닌, 영영 내 힘으로는 그 매듭을 온전히 풀어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친정어머니께서 막내딸인 우리 집에 오셨다가 지난 토요일 꼭 일주일 만에 그녀가 그토록 견고하게 지켜왔던 삶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갔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굵은 손마디는 거북등처럼 두껍고 거칠어 열심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이리도 애잔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울컥 대상 없는 노여움이 내 안에서 살며시 숨을 고르며 떨고 있었다. 정직하게 산 팔십 인생을 바라보는 내 눈에 서글픔 이상의 연민과 두려움이 함께 일었다. 한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먼 훗날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사는 게 그냥 다 그렇지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뭐 특별하겠느냐고 위로하기에는 내 나이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궁금했다. 어머니도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건지 지나가는 말로 들릴 듯 말 듯 물었다. "엄마는 언제 가장 여자라는 걸 느끼고 살아요." 내 작은 속삭임에도 금방 알아들은 모양이다. "여자는 무슨, 사는 게 늘 바쁘고 자식들 생각에 언제 내가 여자라는 걸 느낄 틈이 있었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난 울지 않는 대신 그녀(내 어머니)가 입고 있던 옷을 정성스럽게 벗겨 욕실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다. 유난히 엉덩이 부분의 돌출된 뼈가 눈에 들어왔다. 뼈마디만 굵었지 살이라고는 별로 없는 여윈 여자의 몸이 거울 안에서 할미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겨드랑이 비누질을 하기 위해 만세를 하라고 하는 내게 넘어진다며 행복한 엄살을 부리는 그녀,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거울위로 또르르 굴러가는 물방울 모습을 닮아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철부지 어린애가 되고 싶었다. 간간이 소리 내어 웃던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중요한 부분을 씻어 내릴 때는 간지럽다며 온몸을 비비꼬는 모습이 말은 없어도 여자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오십 여섯 봄, 남편을 잃은 그녀는 사는 게 늘 바빠서 정작 자신은 이 십 년 이상의 세월을 사는 동안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을 뿐 늙은 할미꽃에도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운 감성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어도 가슴으로 울고 또 울었다.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시간 속에 나와 내 형제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었음이 한없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너무도 미안해서...

 

이제 그녀는 혼자 힘으로 청소도 윤기 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늙었다. 신장 나쁜 그녀가 건강이 악화되어 가끔 속옷에 소량의 오줌을 묻히는 경우가 한 달에 한두 번 발생해도 혼자 힘으로 어쩌지를 못한다. 그런 그녀는 외아들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녀의 보금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열일곱에 시집 온 그녀가 이씨 문중에 뼈를 묻겠다고 결심한 그날부터 그녀의 총체적인 삶의 색깔과 향기가 묻어있는 그곳 종가 집을 떠나지 못해 아직도 마당 넓은 집에서 홀로 네 칸짜리 기와집을 품고 산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의 일평생을 칠팔십으로 어림잡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는 지금 막 그 중간선을 지나고 있다. 여자, 여성, 여인, 아내, 엄마... 내게 이름 지어진 무수한 빛깔 속에서 두어 걸음 물러나서 마치 타인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고 느끼고 싶었다. 온전히 나 개인으로서의 삶과 한사람의 아내로서의 삶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얼마만큼 충실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나와는 달리 살면서 이런 쉼표를 갖는 것조차 내 어머니에게는 사치와 허영이었는지 모른다. 자식들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강자인 척 하며 살아온 내 어머니, 그녀의 삶이 지금 서산마루에 해지듯 저물어 가고 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여자는 어릴 때는 부모, 시집을 가면 남편,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지하며 산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내 안에서 강한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타협을 한다.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도 내 운명만큼은 내 의지대로 만들고 가꾸어 먼 훗날 내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그날이 오면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이 세상과 웃으며 작별하고 싶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기에 사는 것이 마냥 고맙고 행복했노라고,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여인으로서 행복한 생을 살았노라 반추하며... 그 생각 위로 몇 몇 얼굴이 스치듯 지나간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황혼에 물들어가는 어머니, 조약돌처럼 만지면 손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내 어린 두 아이, 말이 없어도 몸짓의 언어로 살아있는 여자임을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는 내 남자, 지금 내 남자의 따스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립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2001년 06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