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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가족이 생겼어요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5.

지난 주 화요일(12월 2일),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른 남편이 점심을 먹다 말고 갑자기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던 터라 "갑자기 웬 강아지?" 라는 말로 남편의 이야기에 짧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남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지니 좀 그래."  뜻밖의 말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게 먹던 점심밥을 마저 다 먹었지만 속으로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남편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보면 쓸쓸함이나 외로움 따위의 연약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함께 사는 나조차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그 사람의 배짱과 용기가 부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13년 동안 지켜보면서 일 년에 두어 차례 부러움과 궁금증을 섞어 재차 확인하듯 "정말 자기는 외롭다든지 허전하다든지 하는 그런 느낌 든 적 없어?" 하고 물어 보아도 대답은 늘 같았다. "없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사는 게 당연한 순리라고 말 할 사람들은 분명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는 부인 할 수 없는 예외라는 법칙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 같다. 없어 라고 대답하는 그 사람의 말은 자기감정을 숨기거나 혹은 단세포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너무도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날마다 느끼며 살고 있기에 없어 다음에 덧붙이는 말인 그런 느낌 속에 사는 사람은 아직 철들지 않은 덜 된 인간이라는 소리를 할 때에도 충분히 그다운 대답이라는 걸 인정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기 전에는 개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고개를 한두 번 내어 저은 게 아니었다. 동물에게 쏟는 사랑과 관심을 가족 또는 가까운 이웃에게 돌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오히려 정서적인 측면에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한 적도 있었다.

어쩌다 강아지나 그 밖의 동물을 키우는 집을 방문하다 보면 그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퀴퀴한 냄새가 어쩔 수 없이 코를 자극하고 집안 여기저기 침 자욱 같은 얼룩이 묻어 있는 걸 발견하면 불편해하는 내게 언젠가 남편이 정색을 하고 항변했던 말인 빨래하고 청소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던 나로서는 불결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겨울이면 감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이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에게는 아무래도 위생상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 사주면 안돼요. 라고 부탁을 넘어선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번번이 거절했었다. 그런 나였는데 "날씨가 추워지니 좀 그래." 라는 남편의 말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희야, 늦으면 퇴근 시간 걸릴지도 모르니까 지금 가정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보러 가자." 학교에서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딸아이와 태권도장에서 돌아 온 아들 녀석에게 간식을 차려 주고 딸아이에게는 학원 늦지 않게 알아서 가고 아들 녀석에게는 강아지 보러 경산 가는데 혹 늦을지도 모르니까 공부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집 잘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엄마, 꼭 부탁해요. " 라는 두 아이의 말이 강아지를 만나 집으로 데려오는 그 순간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차안에서 남편은 오늘 바로 사야겠다는 생각하지 말고 몇 번 봐야지 보는 안목이 크니 그냥 편한 마음으로 한 번 본다는 생각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인연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인연이 되면 우리 집에 올 강아지를 오늘 바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첫 눈에 끌리는 강아지를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는 동안 어느 새 남편이 운전대를 잡은 차는 전화로 위치 파악한 어느 가정 집 앞에 도착을 했다.

방문한 집주인을 따라 올라간 옥상 한쪽 모서리에는 어미 개와 낳은 지 50일 되었다는 강아지 4마리가 낯선 우리부부를 발견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짖어대었다. 강아지들을 지켜보고 있는 데 유난히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어미 곁에서 떨어져 나와 우리 부부 주변을 맴돌았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나와 남편은 눈망울이 맑고 또렷해 똑똑해 보이기까지 한 그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 데리고 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지만 개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다른 이가 이틀 뒤에 가져간다고 찜 해둔 개라며 돈을 받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우리 부부는 털이 하얀 그 강아지를 포기 할 수가 없어 강아지를 만나러 오는 동안 차안에서 나누었던 인연이라는 말을 들려주며 처음 키우는 강아지만큼은 마음에 끌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고 싶다며 떼쓰는 아이처럼 오랜 시간 옥상에 서서
"부탁합니다. 저희에게 주세요." "돈을 받아서 안 됩니다." 라는 말을 몇 번이고 주고받다가 그 강아지를 끝내 포기 할 수 없었던 남편이 "검은색 강아지 한 마리도 함께 데리고 갈 테니 저 흰색 강아지 저희에게 주세요." 라고 새로운 제안을 했다.

사실, 털이 흰 강아지가 마음에 들어 데리고 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키워보는 강아지를 한 마리만 데리고 갔다가 어미생각에 울고 먹이를 잘 먹지 않으면 안쓰러울 거라는 생각에서 두 마리를 생각한 것이었지만 한참을 생각하던 개 주인은 마침내 흰색 털이 있는 강아지와 호피무늬 털이 있는 검은색 강아지를 우리부부에게 건 내 주며 잘 키우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강아지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물어보고 난 뒤 1차 예방접종은 했으니 10일 날 2차 접종을 하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차를 탄 지 오 분 정도 되었을 무렵 흰색 털이 유난히 예쁜 강아지가 상자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나오려고 낑낑 소리를 내었다. 낑낑대는 소리가 안쓰러웠던 남편은 나에게 좀 안아 주라는 말을 하고 평소 다른 사람이 키우는 개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던 때와는 달리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덥석 들어서 내 품에 안았다.

따스한 내 품안에서 꼼지락거리기를 몇 차례 어느 새 잠이 들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예쁜 그런 느낌도 잠시, 어느 순간에 깨어난 흰색 강아지는 가족이 된 걸 신고라도 하는 듯 내 옷에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바지와 드라이해야 하는 웃옷에 참 많이도 토해냈지만 그 상황이 하나도 싫지 않았다. 언제 토했냐는 듯이 내 품에서 다시 잠든 그 강아지를 도로 상자에 내려놓을 수가 없어 휴지로 대충 젖은 옷을 닦고는 집까지 내내 같은 자세로 안고 왔다.

그날 저녁 우리집은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내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처음으로 해 보지만 정성을 다해 강아지 두 마리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로 말리는 동안 남편은 강아지가 먹을 사료와 개 껌 그리고 밥그릇 등 강아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 가지고 왔다. 그 날 밤 어미 개와 떨어진 강아지들이 낯선 환경에서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했을지도 모르는 목욕을 한 후라 혹여 감기에 걸릴까 염려되어 비어 있는 4층 방에서 재웠다.

우리 집에 온지 만 일주일이 된 수놈인 하얀 강아지는 아들 녀석의 바람대로 백구라는 이름을 얻었고 암놈인 검은색 강아지는 내가 아는 어떤 이가 붙여 준 나래라는 이름을 얻었다. 데리고 올 때 내게 토했던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백구는 유난히 나를 따른다. 물론 나래도 우리 집 식구 중에 가장 나를 좋아해 남편은 은근히 서운하다는 내색을 하고 아이들은 엄마 다음에 자기들을 좋아한다고 서로 우긴다.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백구는 명랑하지만 질투심이 많은 욕심쟁이고 나래는 머리가 똑똑하면서도 분위기에 빨리 적응하는, 내가 붙여 준 야시라는 별명이 딱 어울린다고 우리 가족 모두의 한결 같은 평이다.

우리 집에 온 다음 날부터 바깥에서 생활하는 진도견인 백구와 나래는 정원 큰 나무 아래에서 배설물을 알아서 처리해 강아지 집 주변 어디에도 지저분한 흔적이 없어 무엇보다 나는 좋다. 사료와 함께 하루에 한 번씩 혹여 라도 추울까 염려되어 밥이랑 멸치 혹은 갈비에 살점을 제법 붙여 물을 부어 끓여 식혀서 먹이는데 과자도 잘 먹고 사료도 잘 먹고 밥이랑 여러 가지 주는 것마다 잘 먹는 백구와 나래를 보면서 아들 녀석은 강아지는 편식도 안하고 참 좋겠단다. 아직 어린 강아지라 끈을 묶지 않고 키우기에 우리 집 정원은 두 마리 강아지에게 있어서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피어있는 꽃대도 부러트리고 어떤 식물은 입에 물고 뜯어먹기도 해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 봄이 되기 전에 그 버릇을 없애야 한다는 게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숙제지만 가족이 하는 말을 하나 둘 알아듣는 백구와 나래랑 어느 새 정들어 버린 남편은 퇴근해서 오는데 어쩌다 그네들이 쫄랑거리며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 주인이 왔는데 반기지 않는다고 내심 서운해 한다. 어디 남편뿐이겠는가? 대문에서 벨을 누르기도 전에 엄마하고 나를 찾던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백구와 나래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비록 동물이지만 수영장에서 운동마치고 돌아오는 내 발자국 소리를 알아차린 백구와 나래가 대문 안에서 아는 체를 하면 나 역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2003년 10월 14일 화요일에 태어난 백구와 나래의 100일 되는 날이 양력 1월 21일 작은 설날이라고 미리 알아 본 아이들은 100일 선물을 무엇으로 준비해야 좋을지를 몰라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을 한다. 우리 가족에게 관심 있는 공통의 대화거리를 안겨 다 준 백구와 나래가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백구와 나래로 인해 아이들의 정서가 더 안정되고 따스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2003년 12월 11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