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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살아간다는 건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4.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제 오후, 미술과 음악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두산갤러리(DUSAN GALLERY)개관 1주년 기념 음악회로 가기 전 몇 시간을 참으로 분주하게 보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외출 후 가족들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나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한다는 그녀가 떠올라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집안곳곳 다시 한 번 흐트러짐이 없나 살피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사이 서둘러 화장을 했다. 1년 365일 날마다 하는 것들 한번쯤은 정돈되지 않은 것들이 있어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가도 좋으련만 오래 된 습관이 이미 내 것인 줄 알고 있는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일일이 챙기고 비가 내리는 날 하루쯤은 그냥 가볍게 머리만 감아도 될 것을 기어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이유로 외출하기 전 또 샤워를 하고 말았다. 이러는 날 보고 가까운 이들은 조금만 줄이면 좋을 텐데 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 좀체 멀리 할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불편을 준적도 더러 있었지만 이제 나도 많이 느긋해져서 웃으며 지켜 볼 줄도 안다. 아들 녀석 방 곳곳에 흩어진 장난감이 여기 저기 눈에 띄어도 딸 아이 방 책상 위에 읽다만 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도 가끔은 보지 않은 것처럼 모른 체 할 정도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루어진 음악회는 Saxophone / 김일수(대구색소폰 앙상블 단장),
Contra Bass / 손금식(다운비트 수석 주자), Piano / 김현섭(다운비트 수석 주자)
3인이 뿜어내는 음악회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귀에 익어
입 속에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들로 이루어졌다.

When I dream - 쉬리 中
A Lover’s concerto - 접속 中
Unchained melody - 사랑과 영혼 中
Love story - 러브스토리 中
Moon river - 티파니에서 아침을 中 등......
다행인지 우연인지 10곡이 넘는 곡 모두가 예전에 내가 모두 보았던 영화중에 삽입된 곡들이었으며 평소 즐겨 흥얼거리는 노래였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며 때로는 가벼운 고개 짓을, 때로는 가벼운 발동작을, 그렇게 비오는 날 음악 속에 나를 풀어놓았다.

대구 미술협회에서 올해부터 처음 시행하게 되는‘대구미술인상’을 두산갤러리 김창범관장님이 협찬하여 주셨는데 최기득씨와 김성수씨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기득씨는 1957년생, 계명대학교 서양화과졸업, 경주 세계 문화엑스포, ‘생명의 노래. 중견작가전’(1998)과 한. 일 작가교류전(대구. 일본 북구주, 1986. 90) ,신조회 뉴욕전(1995), 파리전(1997)등 개인전 6회 새로움의 충격(미진출판, 1989)외 번역서 다수가 있고 김성수씨는 1958년생, 영남대학교 미술학과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판화예술제(예술의 전당, 서울), 제16회 앙데팡당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의식의 확산전(예술의 전당, 서울), 맥향화랑25주년기념 三人行전 등 개인전 4회... 최기득씨의 작품은 아주 오래 전에 접했기 때문에 기억에 가물거리지만 김성수씨의 작품은 맥향화랑25주년기념 三人行전에서 접해보았기 때문에 작가가 추구하는 하나의 형상 혹은 마음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붉은 색과 파랑 색의 조화가 인상적이면서 다소 중국적인 혹은 불교적인 냄새가 느껴졌던......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이런 문화에 낯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미술 혹은 음악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거나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라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음악회와 미술인상 시상식이 끝나고 한쪽에 마련된 술과 음식을 먹고 더 머물다 가라는 걸 뒤로하고 나를 포함한 사십대 초반 여자 여섯 명은 비가 오는 거리로 나와 장소를 옮겼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안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음악이나 미술 혹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기에 첫 만남부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자기나이를 사랑하는 당당한 여성들이었고 삶과 사랑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가야 행복한지를 알고 있는 지혜로운 여성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거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들 녀석이 제일 먼저 "엄마, 다녀오셨어요." 라고 밝게 인사를 하고 뒤이어 남편 "저녁 먹었어?"라는 말로 말문을 열고 아나운서가 장래희망인 딸아이는 "엄마 외출한 사이 아빠랑 저녁 먹고 공부도 함께 했어요."라며 외출한 옷을 바꿔 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내 옆에 바싹 다가와서는 내가 없는 몇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쉴 새 없이 종달새처럼 이야기했다. 살아간다는 건 매순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감동하는 거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2003년 03월 07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