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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12. 9.

한 달에 한두 번 예정에 없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내 흔적과 눈길이 전혀 머문 적 없거나 닉네임은 눈에 익지만 왕래가 거의 없는 글방을 쇼핑센터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듯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한다. 이런 기회는 좀체 생기지도 않지만  마우스 한번의 클릭으로 다른 이의 생각과 느낌을 읽어 내린다는 즐거움은 서점에 나가 진열된 많은 책들 중에서 여러 권의 책을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사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즐거움을 선물한다. 며칠 전, 징검다리처럼 건너 들어간 곳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글쓴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었기에 그곳에 머문 동안의 시간이 결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정신의 포만감마저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울림을 생생하게 전달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울림은 다름 아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였다.

 

어떤 이는 말할 지도 모른다.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더 위대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적인 결함을 이겨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적 결함이란 고독의 부정적인 요소, 이를테면 지독한 외로움을 일컬음이다. 아무리 차가운 이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보다 더불어 사는 능력이 더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다보면 역시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보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사실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혹은 못해서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다시 홀로 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드러난 결과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더불어 사는 능력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 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단서가 붙는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 나는 이러이러해서 이렇다 라는 섣부른 결론 대신에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함께’에 인색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삶의 자세를 스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하여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세련되어 가는데 더불어 사는 능력은 현저히 뒤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싶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피해가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은데 그러한 때,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정작 마음을 나눌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반응할 정도로 깊이 느끼고 있다. 참으로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쓸쓸함은 사람에 따라 그동안 잘못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하는데 쓸쓸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연민이라는 불편한 옷을 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가간 거리만큼 좁혀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누군가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될 때, 다독여 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인가 생각만으로도 흐뭇한 일이다.

 

오늘 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저녁식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주부로서 살아볼 기회를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따스한 행복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집안 일로 물 마를 날 없는 아내의 거친 손을 위해 사들고 온 습진 치료제를 멋쩍은 웃음 날리며 살며시 내 민 남편의 깊은 마음은 함께보다는 홀로를 선택한 이들에게서는 쉬 찾아볼 수 없는 행복이다. 그만큼 더불어 산다는 건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뜻이다.

 

문득,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어 낸 것’ 이라고 했던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생각난다. 거듭 강조하지만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열린 마음과 열린 가슴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우리는 행복해야 할 권리도 있지만 의무도 있다. 잊지 마라.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결코 당신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는 멀리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2005년 11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