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오고 가는 자연의 섭리(燮理)에
어머나 벌써, 경이롭다 못해 새삼스럽기까지 한 풍경 앞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사월에 이사 갈 새 집에 들렀더니 대지 가득 솟아나는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개나리, 매화, 산수유, 진달래 등이 서로 시샘하듯 다투어 망울을 터트리고
장미, 수국, 모과, 석류 등은 고사리 같은 어린 싹을 봄볕에 신고식이라도 하는 듯 살며시 얼굴 내밀고
큰 나무 아래 돌과 돌 사이 어우러지듯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연산홍은 남향의 따스한 기운을 받고 자라서인지
한결 더 윤기가 반지르르한 게 파릇한 빛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잔디와 잘 어울려 보여
자연이 빚어내는 경이로운 순간을 놓칠세라 라일락 나무 아래 서 있는데
봄인 줄 어찌 알았는지 새 한 마리가 모과나무에 포르르 날아들어 햇살 좋은 오후 한때를 더 정겹게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이 봄을 아름다운 봄날이라고 말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세상천지에 어여쁜 꽃이 지천으로 피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움 하나 꽃잎 하나에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대지의 숨결이
기나긴 겨울 동안 한 호흡 한 호흡 숨죽이며 깨어나야 할 때를 기다려
마침내 어린 싹과 꽃망울을 터트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봄은 이렇듯 눈부신 지혜의 산물이며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파도 어김없이 봄날은 온다는 말처럼
아직도 온전히 가시지 않은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의 생명력은
예정대로 새살을 돋우고 새 기운을 대지에 불어넣지 않는가?
날이 가고 달이 차면 새로운 달을 맞이해야 하는 것처럼
오고 가는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각이 자라는 계절,
마음이 크는 계절,
봄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향기롭게 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피며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생생한 봄을 도란도란 껴안으며
매순간 내가 누구인지를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을 아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삶의 모습을 어떤 빛깔과 향기로 채워 나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
아름다운 봄날 나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라는 의문부호가
사람살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뛰어넘어 희망으로 다가가는 용기와 여유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우리들 곁에 찾아 온 봄을 삶 속에서 반갑게 조우(遭遇)하고 싶다.
오늘 미국이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선제공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공격했다 해도
세계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이번 전쟁 역시 명분이전의 계산된 목적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인명피해는 물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일일이 분석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인데
전쟁을 감행한 것을 보면 결국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석유이권확보
더 나아가 미국의 군수산업 보호와 테러지원 세력 및 대량살상무기 제거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했다 라고 밖에 설명 할 수가 없다.
나라 안팎이 이라크戰으로 인해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봄은 멈추거나 후퇴하는 법은 없다.
느껴 보아라.
가슴 속 저 아래에서 팽팽하게 긴장하며 터질 듯 솟구치는 두근거림을,
들어보아라.
대지의 생명력이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강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소리를......
봄은 스스로 묶은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 가는 지혜와
돌아선 등을 마주보아 다독여 줄 수 있는 용서가 함께 숨 쉬는 계절이다.
지금이야말로 깨어있는 의식으로 정치, 경제 사회전반에 걸쳐 함께 고민하고 다독여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문득 사람이 꽃 보다 더 아름답다 라는 말속에 숨은 향기를
한 번이라도 당신의 삶 속에서 진하게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라고 묻고 싶은 날이다.
2003년 03월 20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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