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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새로운 만남(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3. 31.

텔레비전 보는 걸 즐기지 않는 나는 드라마 허준 이후로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천둥소리’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특별한 볼일이 없는 한 애써 시간을 만들어 네모상자 안에 내 마음을 맡겼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의 저자인 허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대상황과 허균의 이상국가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서... 

교과서에서 배웠던 허균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훨씬 능가하는, 홍길동전이라는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오늘은 내 나름의 시각으로 바라본 느낌을 이야기 하고자한다.
 
1569(선조 2)-1618(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장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이며, 호는 교산(蛟山).

여류소설가로 유명한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 것이다.

어려서부터 명민하여 9세 때 이미 어른들로부터 장차 문장가로 대성하리라는 칭찬을 들은 허균은

둘째 형 하곡으로부터 고문과 한유 및 소식의 시를 배웠으며 유성룡에게 사사하여 문을 배웠으며

삼당(백광훈, 최경창, 이달) 시인의 한 사람인 이달에게 당시를 공부했다.

 

여기서 잠시 짚어 보아야 할 인물이 이달(李達)이다.

천둥소리라는 드라마 전반에 걸쳐 허균의 주위에는 늘 이달(李達)이 있었다.

이달이라는 사람은 손곡(蓀谷)이라는 호로 더 알려진 인물이며 허균의 죽마고우인 자는 여인, 호는 시잠인 이재영의 친부이며

허균의 막역한 서출친구들의 스승이며 그들의 버팀목역할을 한 인물이다.

허균은 권필, 이안눌, 조위한, 이재영 등과 같은 당시의 불우한 문인들과 서로 친교를 맺었으며

그 당시 사회를 살았던 인물치고는 인간평등에 대해 매우 깨어있는 인물이었다.

 

오늘 난 허균이 17세에 한성부에서 치르는 초시에 급제했고
26세 되던 해엔 문과에 뽑히었으며, 3년 뒤 29세 때는 중시에서 장원을 하여
당시 예원(藝苑)을 놀라게 한 인재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국가건설을 위해 애를 쓴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허균은 확실히 뭔가 다른 인물이었다.
공주목사 시절 이상국가를 위한 준비단계인 군사훈련을 주도하는 동지를 만나러
변산과 부안으로 내려가는 사이 친구에게 잠시 자신의 자리를 맡긴 이유로
광해군이 내려 보낸 충청도 지방의 암행어사에 의해 파직 당했지만

벼슬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충분히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알아보는 배짱과 믿음

그리고 신분이 천한 기생 매창과 첩(소실)성옥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참으로 따스했다.

물론 훗날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무질서한 생활을 했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인간다운 사람에게서 더 정을 느끼고 그 자신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신분의 지위를 막론하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사고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그를 알아본 광해군은 세자 시절부터 허균을 가장 믿을 만한 측근이라고 여길 만큼 아끼고 존중해주었다.

사실 광해군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처음부터 폭군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광해군은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지혜롭고 똑똑하던 광해군이 폭군으로 변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자이면서도 선조 임금으로부터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점과 명나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세자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당파싸움을 일삼는 조정대신...

참으로 광해군을 둘러싼 것들은 모두가 다 어려운 선택을 요구했다.

 

그 중 가장 그를 외롭게 했던 것은 관송(이이첨)과 교산(허균)의 대립과
훗날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허균이 선택한 배신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가
광해군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그리하여 마침내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불러지게 된 배경이 아닐까한다.

 

특히 천둥소리라는 이 드라마 후반에 걸친 허균에 대한 광해군의 배려는
참으로 놀라울 만큼 큰사랑이었다.
허균의 이상국가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는 광해군은
군주로서의 부탁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우정으로서 간곡한 부탁을 했다.
살아남아서 자신과 함께 이 나라를 개혁하자고 ...
하지만 허균은 임금하나만으로 이 나라가 새롭게 바뀌어지지 않는다며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허균과 광해군은 임금과 신하로서가 아니라
서로를 염려하는 우정의 뜨거운 눈물로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말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의 눈빛, 어쩔 수 없이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던 사실은 이 드라마 종반에 걸쳐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과연 허균은 죄인인가?
광해군 또한 영원한 폭군으로 불러져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난 과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
허균이 살았던 시대에 이이첨만 좀 더 일찍 제거되었다면
허균은 어쩜 역모라는 반란을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광해군 역시 온전한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617년 49세 때 좌참찬이 되었으나 경운궁 투서 사건이 벌어지자
허균의 세력이 날로 커 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이이첨이
허균에게 역모의 죄를 씌우니 허균은 50세로 서시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허균이 죽은 뒤 그의 글들은 많이 없어졌으며 남아 있는 것들도 감추어졌다.
그가 외손자에게 보내어 보관케 했던 문집《성소부부고》도 처음 그가 편집한 체제가 아니며

문집에 넣지 않고 따로 엮었던 여러 책들 가운데서 《 국조시산》, 《한정록》, 그리고 《홍길동전》만이 전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홍길동전>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신분상으로는 불우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당대 사회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제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허균을 바라보는 후세 사람들의 시각 또한 여러 견해가 있다.  
문장이 뛰어나다는 것에는 인정을 해야겠지만
기생과 신분이 천한 계층과 자주 어울렸던 점에서는 경망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으나
허균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사회마다 그들 나름의 약속이나 규칙이 있는데
허균은 그 시대에 한 발 앞선 인물이기에 결국 세상이 그를 제대로 기용할 수 없었고
그 또한 자신의 생각과 어깨를 나란히 해 주지 못하는 세상을 잘못 만난 데서 오는 요인이 제일 크지 않나 하는 생각,

한마디로 한 사람의 영웅이 탄생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 시대를 잘 못 타고 나

대중과 계급층을 함께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해 본다.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정의 구현의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그의 계획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여인(이재영)이 새로운 이상국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관계로
이이첨에게 거사계획을 다 토해내어 결국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집안멸망과 함께
자신의 그 많은 문학적인 가치마저도 이 땅에서 대부분 소멸해야 하는 운명을 초래했다.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못했고 그 또한 세상을 잘못 만났기에
그의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상국가는 결국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민중의 편에 선 그는 확실히 앞선 생각을 지닌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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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국가, 정의 구현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정녕 우리모두는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상국가는 말 그대로 이상국가이기 때문에
한 단계의 꿈을 이루고 나면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는...
하여, 완전한 이상국가는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 본다.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홍익인간의 이념과 행복추구권에 대한 생각들을
현실 속에서 실천 할 수 있는 비전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은 영원히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멈출 수 없는 뜨거움, 비단 끓는 피가 움직이는 청춘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불혹의 나이를 앞에 둔 여성에게도 마음의 천둥소리는 지치지 않고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난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으로
마음의 이상국가 작은 평화를 그려보며 살며시 미소 짓는다.

 

 

 


2001년 04월 24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