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이들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단풍 주우러 갔습니다. 아직은 도심 한가운데까지 단풍이 곱게 물들기에는 너무도 제 욕심이 컸나 봅니다. 드물게 단풍이 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와~ 하고 감탄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어릴 적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애써 감추며 한참을 벤치에 앉아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옛날 나 역시 그랬었지 하는 생각에 혼자 웃고 있는데 대학원생인지 젊은 교수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다가와 "산책 나오셨나 보네요." 하면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모습이 너무도 보기가 좋았다는 말과 함께 ... 감기 기운에 목이 약간 쉬기도 했지만 대답대신 수줍은 듯 가벼운 목례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아직은 덜 익은 단풍잎이지만 소풍 나온 병아리 마냥 교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바람에 팔랑 떨어져 바람개비처럼 도는 나뭇잎들을 서로 줍겠다고 뱅글뱅글... 덕분에 어린 고사리 같은 두 아이, 마주 잡은 작은 손 가득 노을 닮은 붉은 단풍이 꽃처럼 피어 금방이라도 또르르 맑은 웃음소리를 낼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입을 맞춘 듯
"엄마도 어릴 때 우리처럼 단풍 주우러 다녔어요?"
"아니, 엄마는 단풍을 주우러 다닌 게 아니고 아예 산을 누비고 다녔지."
"엄마 어릴 때 이야기 지금 해주면 안 되요?"
"듣고 싶니?"
"네."
그렇게 시작 된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와서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같은 성씨가 주로 살고 있는 집성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종가 집이라 집 모양 또한 특별났지요. 옛날 벼슬한 집안의 기품이 그대로 서려있는, 어릴 적 기왓장 모양이 경복궁에 있는 것과 흡사해서 우리 집에 머슴이 살고 있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마치 내가 그 옛날 양반 댁 규수라도 된 착각을 하며, 그도 그럴 것이 위의 큰언니는 아씨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동네 사람들은 무슨 큰 일이라도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의논하고 더러는 우리 집 일로 많은 사람들이 품삯을 받아가며 일을 하곤 했기에...
아마 이맘때쯤으로 기억되는, 엄마를 비롯한 우리 집 여자(할머니, 엄마, 위로 언니 셋, 그리고 나)들은 모두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골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꽃들을 세 개의 꽃밭으로 나누어 만들어진 화단에 심고 그것으로도 모자란 듯 집 안팎을 빙 둘러 가며 꽃씨를 뿌리고 가꾸던, 그런 환경 때문인지 아버지께서 머슴들을 데리고 밭이며 논으로 일 나가셨다가 돌아오실 때면 가끔씩 지게 한쪽을 계절에 따라 진달래, 싸리 꽃, 구절초, 갈대 등 흔히 알고 있는 이름의 꽃들과 이름은 모르지만 예쁘다고 생각되는 꽃들을 꺾어 채워 가지고 오셨습니다.
외동아들인 바로 위 오빠가 초등학교 때 대구로 전학을 갔기에 여름 방학이면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가야 하는 일은 주로 내 몫이었기에 산, 나무, 꽃, 풀 등 자연이라고 묶어 말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게 있어 익숙해서 편안한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을이 되면 구절초 향기가 좋아 산에 오를 일만 생기면 코를 끙끙거리며 한참을 풀숲을 헤매고 다닌, 자연은 나를 비롯한 시골 아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천혜의 놀이터였습니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아니면 유난히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인지 지금도 산에 오르면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식물의 이름을 가리켜 주는 사람이 되었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자연의 느낌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선물이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면서 뛰어 놀았던 어릴 적 친구들이 내 인성에 얼마나 큰 도움과 영향을 끼쳤는가는 말할 필요조차도 없는..
요즘은 시대가 변한 이유로 동창과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공유할 친구들을 찾는데 인터넷이 한몫 한다고들 여기 저기서 난리인 모양이지만 난 아직도 디지털시대에 컴퓨터를 즐기기는 하지만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아날로그 사랑방식을 고집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이지만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그 어린 시절의 순수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날로그 방식을 사랑한 시절을 보내고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기억의 가장 저편에서 자리하고 있는 추억이지만 저마다 보석처럼 빛나던 순수의 시절이 있었기에 더 그리운, 아름다운 뭔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억의 창고에서 그 어떤 얼굴을 발견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개 숙인 중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사람일지라도 한때는 보석처럼 빛나던 시절이 있었기에 추억은 그리움으로 잦아드는 따스함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요. 추억할 수 있는 마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만큼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 낀 먼지와 때를 동화 같은 마음으로 정리하고 싶은 바램이 있다는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해도 좋겠지요.
비록 지금은 힘없고 가진 게 없다 하더라도 그 옛날에는 모두들 저마다 가슴 속 언저리에 꼭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자기만의 파랑새를 품고 다녔을 테니까... 어쩜 나 역시 퍼즐 게임을 맞추듯 지금의 내 시간에 그 어린 시절의 시간을 함께 겹쳐보고 싶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먹어도 추억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추억 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요. 추억은 세상살이가 힘겨워질 때 살며시 기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까닭에 오늘은 추억이라 부르는 그리움 하나를 챙겨 두어야겠습니다.
2000년 10월 24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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