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15일 일요일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TBC 문화탐방)은 곧장 호텔로 가서 짐을 풀지 않고 미리 마중 나와 있는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셔틀버스로 옮겨 탔다. 자리에 앉자 버스에 탄 사람들이면 누구나 잘 보이는 위치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네모난 종이와 마주쳤다. NO SMOKING, NO DRINK, NO FOOD 등 여러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지켜주었으면 하는 사항들이 적힌, 차가 출발하자 이민 온지 10년이 넘었다는 한국인 남자가이드가 시드니 일정표를 나눠주었다. 밤새 잠을 설친 탓에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시간대별로 짜여져 있는 일정표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만들었다는 길이가 4.2km인 터널이 나왔다. 터널을 벗어나자 가이드의 말에도 가속도가 붙는지 본격적인 호주에 대한 몇 가지 알아야 할 상식들을 일사천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국토의 90%이상이 모래이거나 사암으로 이루어진 호주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으며 l인당 GNP(국민총생산) 소득 3만불, 남한의 78배, 한반도 면적 35배에 달하는 광활한 대륙이나 총 인구는 약 1900만에 불과한 복지국가, 1k평방미터에 140명이 사는 서울과 비교하면 2명에 불과한 넓은 땅을 가져 차로 이동하는 중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만큼 빨리 가라고 차 경적을 울리지도 않으며 좀체 거리에서 경찰 차를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는 등 사소하지만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해주려 애쓰는 가이드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나 싶더니 모두 창 밖을 내다보라는 주문을 했다.
기대에 찬 얼굴로 가이드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의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거리의 전봇대는 자연보호를 위해 모두 나무로 사용했으며 관광거리에는 빨래를 대로변 쪽으로 널 수 없기 때문에 집집마다 뒷마당이나 실내에 빨래를 넌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지만 인큐베이터의 원리가 출산조절이 가능한 캥거루주머니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나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 기초공사 하다가 황금개구리 서식지를 발견하고 위치를 변경해서 지었다는 이야기만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이드의 마술처럼 술술 이어지는 이야기에 어느 순간은 놀라고 어느 순간은 감탄하면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눈마저 반짝이며 귀 기울였다. 마치 유치원생들이 여기보세요 하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따라하세요 하면 주저 없이 따라하는 어린아이처럼...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을 향해 가는 도중에도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호주 원주민인 아보리진 이야기부터 월급이 아닌 매주 목요일 받는 주급으로 생활하고 있는 호주사람들의 생활 속 모습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가이드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여지는 것이 옳을 거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매일 매일이 무슨 날(월요일은 엄마의 날, 화요일은 영화 보는 날, 수요일은 배고픈 날, 목요일은 주급을 받는 날, 금요일은 주말 휴일, 토요일은 소풍가는 날, 일요일은 아빠의 날)로 정해진 호주사람들을 이해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드니만 해도 아름드리 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진 공원이 800개가 넘고 자연보호를 위해 살충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유독 파리가 많다는 말을 들을 때는 그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시드니 서쪽 37km 지점에 있는 호주에 사는 동물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페더데일 와일드라이프 파크(Featherdale Wildlife Park)를 관람하기에 앞서 그곳에 사는 동물인 코알라, 물루, 왈라비, 왈라, 에뮤, 움바트, 딩고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중에서 내 관심사를 끄는 동물은 물도 먹지 않고 오로지 유칼립스 잎만 먹고산다는 코알라였다. 80%의 수분, 15%의 알콜, 독극물 마약 3%, 식이섬유 2%로 구성된 유칼립스 잎을 먹고산다는 코알라는 거의 대부분을 잠에 빠져있거나 깨어있어도 몽롱한 상태거나 취해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모두들 하하 호호 하고 웃었지만 내구성이 뛰어나고 잘 섞지 않아 죽지 않는 나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명(약 1600년)이 긴 유칼립스 나무에 대해 점점 빠져들었다.
1870년에 지었다는 한식당인 EVERTON HOUSE에서 다소 부실한 느낌이 드는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국립공원인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으로 향했다.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블루 마운틴이라는 이름은 고무나무가 오일을 공기 중으로 내뿜을 때 빛과 반응하여 파란색 안개가 생성되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그곳이 있는 시닉 월드(SCENIC WORLD)는 과거 Katoomba Coal & Shale사의 본사가 위치했던 곳으로 카툼바(Katoomba)는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관광 산업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 카툼바 지역은 등유용 혈암을 캐는 광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1년에 70만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시닉월드에 가면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보고 싶은 SCENIC Skyway, SCENIC Railway, SCENIC Walkway, SCENIC Flyway를 만날 수 있다. 각기 다른 느낌의 경험이 잊혀지지 않을 만큼 즐거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아래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데 막상 출발하자 놀이기구를 탄 느낌처럼 재미있었던 궤도열차라고 불리는 SCENIC Railway였다. 거리가 짧아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으나 90도까지 경사진 계곡을 달리는 그 기분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열대우림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산책로 길이가 총 연장 2.2Km로 호주에서 가장 길게 경사진 산책로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블루 마운틴 계곡에는 다양한 동식물과 전 세계에 서식하는 유칼립스 700종 92종도 서식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긴 고사리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안개 탓인지 슬픈 전설을 지니고 있는 세자매봉이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곳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에 어느새 친구처럼 자라버린 딸과 다정한 모습으로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세자매봉을 향해 저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움직임이 많은 일행들에게 가이드의 주문이 이어졌다. "왼쪽을 보세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모두들 와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계곡 아래에서 올려다 본 그곳에는 하얗게 떨어지는 계곡 물이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시 차는 출발해서 메아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에코포인트(Echo Point)로 갔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탓에 혹시 그곳에서는 안개가 걷혀 세자매봉의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잔뜩 기대를 했지만 세자매봉 모습은 흔적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시드니수족관을 향해 이동하는 중 제철 과일이 맛있다는 가이드의 안내로 도로변에 있는 과일가게에 들렀다. 맛보라고 준 껍질째 먹는 청포도는 당도, 가격에서도 만족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껍질을 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얇아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정말 최고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저녁 6시30분이면 거리의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는다는 시드니 사정을 감안해 저녁 호텔로 돌아가 간식거리라도 할 겸 모두들 입맛에 맞는 과일들을 골라 샀는데 그 중에서 체리와 청포도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서울과 부산에 있는 수족관(aquarium)을 구경한 경험 때문인지 머리 위를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오리가 유영을 하고 동굴처럼 생긴 곳에 색색의 산호가 살아 움직이고 있어도 시드니 수족관은 그다지 내 흥미를 잡아끌지는 못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중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가 잠시 낯선 이국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어색함도 신기함도 없었다.
수족관 구경을 마치고 STARCITY CASINO OOIRI에서 뷔페로 저녁을 먹고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로 향했다. 본다이 비치는 시드니의 비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높은 파도가 유명하여 서핑의 메카라고 불리는 곳이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비치발리볼 경기를 한곳으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본다이 비치 앞에 있는 SWISS GRAND HOTEL에서 짐을 풀었는데 이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호주로 신혼여행 온 사람들이 많이 묵어 가는 곳으로 나라를 막론하고 호주로 여행 온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깨끗해서 오히려 시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남태평양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경치 좋은 이 호텔에 한번쯤 묵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위치와 시설이 마음에 들었다.
대구공항에서부터 함께 한 여행책임자와 현지가이드를 제외한 15명의 일행 중 10명은 학생이고 5명 중 3명은 이십대 후반의 친구 사이인 여성이고 나머지 2명은 나와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였기에 방 배정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가족 아니면 친구로 묶어 배정했다. 여행객 중 결혼한 사람은 나처럼 자식과 함께 온 삼십대 후반의 아줌마뿐이었기에 자연스레 말할 기회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았는데 짐을 풀지도 않은 상태에서 두 가족은 올해 수능을 쳤다는 혼자 온 남학생과 함께 본다이 비치 (Bondi Beach)로 나갔다. 태평양에 직접 면해 있어 파도가 높은데 ‘본다이’는 원주민인 아보리진 언어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라는 의미로 1km에 이어지는 모래사장은 그야말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발에 닿는 모래입자가 어찌나 곱든지 맨발로 이리저리 뛰어도 발이 아프거나 피곤하다는 느낌이 없어 더 더욱 좋았던 그곳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개구쟁이 어린이가 된 듯 밀려오는 파도에 장난을 걸며 놀았다. 때가 여름이라 그런지 간간이 내리는 빗속인데도 밀려오는 파도 속을 빠져나가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그곳에서 여름이면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 해수욕장을 떠올렸다.
호텔로 돌아와 젖은 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싱글 침대가 둘 놓여있는 침대에 딸과 각기 나란히 누워 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직업이 초등학교선생님과 학원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이십대 후반의 아가씨들이었다. 여행 와서 첫 밤인데 딸아이에게 혼자 먼저 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이미 본다이 비치에서 한바탕 놀다 왔기에 몸도 피곤하여 오늘은 쉬고 싶다며 재미있게 놀다 오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한국과 2시간 차이가 나는 이유로 남편과 아들 녀석이 저녁을 먹은 후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볼 시간 즈음에 전화를 했다. 남편의 목소리는 사랑스러울 만큼 달콤했고 아들녀석의 목소리는 살 떨릴 정도로 반가웠다. 그렇게 몇 가지 서로가 없는 동안의 소식들을 묻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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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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