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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그녀, 호주와 뉴질랜드로 가다(부제 - 7박 8일간의 여행일기)

by 시인촌 2006. 1. 26.

2006년 01월 14일 토요일(기내에서 1박을 하다)

 

 

 

방학이라 그런지 인천국제공항에는 나이, 성별, 국적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공항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 틈 사이로 물고기처럼 유영하던 나는 일순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대구공항에서부터 엄마인 나를 놓칠세라 줄곧 내 팔을 놓지 않고 자석처럼 팔짱을 낀 채 걷던 딸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섰다가 대구공항에서부터 함께 한 일행들이 저만치 앞서 가자 엄마 때문이라며 빨리 가자고 투덜댔지만 내 눈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종종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 젊은 여자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분명 낯은 익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그 여자를 내가 어디에서 봤는지 어떻게 아는 사인인지를 기억해내기도 전에 발길은 기계처럼 움직여 어느새 환전소 앞에 서 있었다.

 

비행기를 타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내가 탈 비행기인 KE 811편 비행기가 20분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데 문득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보이기 시작했다. 국제선이니 당연한 일인데도 그 순간만큼은 낯선 이방인이 된 듯 묘한 기분이 들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시선 역시 방금 전까지 내가 보고있는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니 엄마로 보이는 금발 머리의 삼십대 젊은 여자가 고사리 같은 어린 아들의 손을 비비듯 만지며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아들 녀석과 남편 생각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짧은 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 살면서 종종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사소한 풍경에서 뜻하지 않은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이 내게도 그랬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이십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딸아이는 가지고 온 세 권의 책(지구 밖으로 행군하라 - 한비야,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나무 - 베르나르 베르베르)중 나무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책 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을 다 읽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옆에서 책 읽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기내에서 빌려주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제목은 최종길 지음의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였다. 책을 쓴 지은이의 이야기가 언젠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소개된 적이 있다는데 그 프로를 즐겨 시청하는 편인 나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책 속의 주인공 이야기는 기억이 없었다. 내 자신이 책 속에 녹아드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의 아내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표현된 책을 읽어 내리다가 나는 몇 번이고 조용히 읽고 있던 페이지를 덮어야만 했다. 위대하지만 너무도 안타까운 사랑 앞에서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은 환경이 변하면 더 예민해지는 나를 걱정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돌아올 때는 몸무게 2kg을 찌워오라는 당부까지 하면서 자신이 미국 출장 갈 때 열 몇 시간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태연히 자고 먹고 거의 기계처럼 반복해 함께 한 일행들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환경에 유독 예민한 나 같은 사람한테는 10시간 30분을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잠을 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예민함은 평소 미인은 잠꾸러기라며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고 부르짖던 딸에게까지 전염되었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책 속에 파묻혔다. 그것만이 지루한 기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도 되는 듯, 책을 읽다 눈이 피로해지면 잠을 청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기내에서 잠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만 감은 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팝송과 최신가요를 들으며 보낸 시간이 많았기에 이른 새벽 아침식사로 나온 전복죽은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드니는 정말 아름다웠다. 주황색 지붕에 초록 나무들 그리고 파란 바다...... 낯선 이국 땅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 가슴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침 07시 25분에 도착예정이었던 내가 탄 비행기는 지체시간으로 인해 아침 08시 즈음에 시드니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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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