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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호주여행기 - 이희숙

by 시인촌 2006. 2. 17.

셋째 날(2006년 01월 17일 화요일)

 

 

묵고 있었던 호텔이 본다이 비치 앞에 있어 동부해안관광 중 본다이 비치는 빼고 더들리 페이지(Dudley Page Reserve)와 갭팍(Gap Park)으로 향했다. 더들리 페이지는 시드니 항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기념사진 찍는 장소로 더 없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는 더들리 페이지란 사람 개인소유의 땅인데 전망이 너무 좋아 혼자보기 아깝다고 시드니시에 기부를 했다고 한다. 그 땅을 기부할 당시 더들리 페이지는 그 어떤 용도로도 상업적인 건물을 짓지 말고 오로지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로만 이용하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시드니시에서는 그 넓은 땅을 어떻게 이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결국 지하에 물탱크를 묻고 그 위에 잔디를 심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호텔에서부터 내리던 보슬비가 더들리 페이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굵은 비로 바뀌어 모두들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차안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했다.

 

아쉬움을 묻고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라는 갭팍을 향했다. 갭팍이라는 이름은 절벽틈새로 보이는 멋있는 바다경치가 좋다고 하여 부쳐졌다는데 수직 절벽이 장관인 갭팍에 마주 선 느낌이란, 아찔한 현기증에 온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도 가슴이 뻐근할 만큼 머릿속은 환희 그 자체였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 빠삐용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기억해주어야 한다는 착각에 잠시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유에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빠삐용이 야자열매를 채운 자루와 함께 수십 미터 벼랑 속으로 몸을 내 던지는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처럼 한순간 갭팍은 내게 있어 아름다운 여행지 그 이상이었다.  1857년 침몰한 영국 선박을 추모하는 닻이 세워져 있고 122명의 선원가운데 유일한 생존자가 살았다는 갭팍 앞 작은 집에는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 역사가 깃 든 집을 쳐다보며 아름다운 바다와 절벽을 배경으로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사진기를 눌러댔다.

 

이번 문화탐방에 참가한 사람들 중 3분의 2가 학생인 탓인지 가이드는 일하고 공부하고 여행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조기유학 열풍에 합류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나이인 20세 이상이 된 후 비행기표와 1000불만 챙겨서 보내라는 내용은 그 자리에서 듣고 흘려보내기엔 가슴으로 와 닿는 공감대가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석 달이면 그곳 유학지로 선택한 현지에 남을 것인지 고국으로 돌아올 것인지 판가름난다는 말 앞에서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와 호주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들려주던 가이드의 말 중 비행기 블랙박스가 호주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것과 세계제일의 양모생산국답게 양의 뼈로 본차이나를 만들고 내장은 테니스라켓 줄을 만든다는 사실은 사형제도가 없는 호주에서 식품위반을 하면 가장 무거운 벌인 종신형에 처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내게 있어서는 새로운 정보였다. 더구나 정말 그럴까 하는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 드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혼사유에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꽃 선물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키스를 4번 해주지 않아도 여자 몸무게가 120kg 이상이어도 이혼사유에 해당한다는, 문화와 생각차이가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여행 도중 종종 느낀 것은 호주는 여자가 살아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기를 반복하는 시드니의 변덕스런 날씨는 C/COOK LUNCHEON CRUISE 탑승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폭우가 몇 분 동안 정신 없이 퍼부어 댔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비를 피하느라 상점 처마 밑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지만 여행을 떠나오기 전, 짐 정리를 도와 준 남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챙겨준 우산 덕분에 우리 모녀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로 돌아서자 배에 오를 수 있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코에 익숙한 김치냄새가 났다. 여느 때 같으면 강한 냄새에 얼굴을 살짝 찌푸릴 수도 있었겠으나 때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모두들 김치냄새가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늘 먹던 김치 맛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흉내낸 김치는 먹을 만했다. 호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으뜸인 것은 세계3대 미항인 시드니만과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릿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드니만에는 통근자를 실어 나르는 페리 사이로 그림 같은 요트와 관광선이 지나다니는데 거리의 초고층 빌딩과 벽돌집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 여행객들로 하여금 낭만적이라는 인상을 심기에 손색이 없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상 밖에서 바라다본 풍경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배가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이를테면 아름다운 시드니 항을 배경으로 유유히 떠 있는 요트나 보트,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모습은 여행으로 인해 한결 더 부드러워진 감성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물로 인식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오페라하우스로 자리잡았지만 초기 계획과 다르게 당초 건설비의 1400%라는 천문학적인 금액과 예정보다 9년이나 늦게 완공되는 과정에서 결국 다른 건축가에 의해 작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 오페라하우스를 직접 눈앞에서 구경하는 재미란 먼 거리인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른 매력이 있었지만 솔직히 그림엽서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모습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지붕모양은 당시로선 무명에 가까운 덴마크의 Jorn Utzon이 아내가 깎아 놓은 오렌지를 보고 구상했다는 설과 달리 내 눈에는 조가비모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멀리서 바라볼 때는 깨끗한 순백색이었으나 가까이에서 본 오페라하우스의 건물은 아이보리색이라 함께 한 일행들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사람들이 그토록 아름답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오페라하우스를 초기 도안한 Jorn Utzon 이라는 건축가는 불행히도 197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테이프를 끊으며 개관식을 할 때 개관식에도 초청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 때문인지 지금 현재까지도 자신의 경력 중 백미 라고 할 수 있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곳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로부터 관광객들에게 슬픈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오페라하우스로 올라가는 건물 계단이 모두 조립식이라 보수가 쉽고 보수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과 특별한 화장실로 알려진 구조(보기에는 손 씻은 물이 바닥으로 그냥 흘러내릴 것 같은데 감쪽같이 안으로 물을 흘러들게 한 설계)는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기능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건물의 균열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 때문인지 전 세계 유명 예술인들이 선망하는 공연장으로 관람객 수가 매년 200만 명이 넘는다는 명성과 달리 관광객들에게는 녹음실, 음악당, 전시장, 도서관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내부를 살펴볼 기회를 차단시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컸다. 세계에서 2번째로 긴 다리라는 하버브릿지는 아치형 교각의 모습이 마치 옷걸이와 비슷하다고 하여 ‘옷걸이(Coast Hanger)’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 바라다 본 전경은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미시즈 맥콰리체어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아름다운 조화를 가장 좋은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시드니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사진 촬영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일 뿐 아니라 시드니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조깅과 산책을 즐기는 장소로도 사랑을 받는 곳이다. 호주군의 선착장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영국으로 출장 나간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자리에 만들어진 미시즈 맥콰리체어에 앉아 웃는 얼굴로 사진도 찍었지만 어느새 마음은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남편생각에 젖어있었다. 언제 어디서고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면 고마워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15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고 지켜준 남편이 그 순간 왜 그리도 보고픈지, 내 자신이 미시즈 맥콰리가 된 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내 남자가 그리워졌다.

 

미시즈 매쿼리스 포인트에서 바다를 바라봤을 때 약 500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솟아오른 작은 섬이 바로 핀치가트 섬(Pinchgut Island)인데 여기에 만들어진 성채를 ‘포트 데니슨’ 이라고 부른다. 유형식민지 시대 죄수들을 유폐하기 위해서 수용소로 만든 것인데 당시 이 부근의 바다에는 유난히 상어가 많아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를 가이드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는 여행으로 인해 느슨해진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일어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오싹했다. 1857년 이후에는 포대를 설치해 견고한 요새로 만들어 시드니만의 바다를 지키는 역할도 했다는 이곳은 당시 총독이었던 ‘데니슨’ 제독의 이름을 딴 것이며 현재는 역사적 기념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설명을 끝으로 영화배우 니콜키드만와 톰크루즈가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던 세인트 메리 성당으로 향했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세인트 메리 성당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북쪽으로 나 있는 성당이며 위를 향해 쏜 조명덕분에 밤이면 아래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손색이 없다는 말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미사가 없는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긴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는 순간 예정에도 없던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기도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새겨졌다. 그 마음을 안고 무작정 성당 왼편에 마련된 과일 향이 나는 촛불에 불을 켰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선 채로 기도를 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는 동안 건강과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기를,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강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도를 마친 후 발자국 소리마저 내어서도 안될 것 같은 경건한 그곳 성당 내부를 살펴보았다. 엄마인 나를 따라 성당 내부를 살피던 딸아이는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이르는 성서 내용이 형상화된 우아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다며 사진기를 눌러댔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혹여 라도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눈과 마음으로만 보라고 주의를 준 뒤 딸아이보다 몇 발 앞서 그곳을 나왔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나 샀던 딸아이도 면세점에서는 호주에서 물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 때문인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과 동생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열심히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요리조리 꼼꼼하게 살피고 묻고 하던 딸아이는 자신이 메고 다닐 가방과 동생에게 줄 부메랑과 캥거루 인형을 골랐다. 우리 모녀의 모습을 처음부터 따라다니며 지켜보고 있던 직원이 이제는 내가 살 차례라고 판단한 때문인지 내 곁에 바싹 다가와 생각한 물건이나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러본 끝에 남편에게 줄 선물은 세계 제일의 양모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어린 양가죽으로 만든 제품들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는 걸 익히 알고있던 터라 그곳에 진열된 것 중에서 제일 비싼 가죽지갑을, 나는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양모 숄을 샀다. 산 물건을 마음에 들어하는 나와 달리 딸아이는 너무 많은 돈을 썼다며 가까운 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싶어 여기저기 둘러보는 내게 사사건건 방해공작을 놓았다. 누가 엄마인지 딸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처럼, 덕분에 호주면세점에서의 쇼핑은 거칠어지기 쉬운 부위에 특히 좋다는 크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와 달리 부자의 조건이 집 앞에 물이 흐르고 교통이 번잡하지 않고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요트나 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호주는 잘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떠나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200년밖에 되지 않는 역사가 짧은 나라지만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고 대체의학과 예방의학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 호주를 짧은 기간동안 보고, 들은 것으로 이렇다라고 말하기에는 모순이 있지만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은 들었다. 호주에서 오클랜드로 떠날 때는 이른 저녁시간이었는데 시차 때문에 오클랜드에 도착할 즈음 그야말로 깜깜한 늦은 밤이 되어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클랜드의 야경은 마치 보석을 땅에 박아놓은 듯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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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