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2006년 01월 16일 월요일)
호텔 조식 후 블루워터파라다이스인 포트스테판으로 이동 중 누군가 가이드에게 누드비치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말했다. 일행 중 3분의 2가 학생인 이유로 수위가 높은 야한 이야기는 최대한 걸러서 말해야하는 입장인 가이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누드비치에 갔다가 곤욕을 치렀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말로만 들었지 누드비치에 실제로 가본 적이 없었던 가이드는 호기심 많은 한국의 사 오십대 아저씨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누드비치에 가긴 했는데 어디서부터 옷을 벗고 들어가야 할지를 몰라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서부터 용감하게 제일 먼저 옷을 벗고 앞장을 섰는데 아뿔사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멀쩡히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이야기 해주었다. 얼굴은 화끈거렸지만 자신만 믿고 뒤따라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애써 용기를 내어 내려간 누드비치는 멋진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 아가씨가 많을 거라는 상상과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손자, 손녀가 대부분이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나왔다는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면서 죄인들의 유배지였던 호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국토의 대부분이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많은 비가 내려도 홍수도 나지 않고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아 눈사태도 일어나지 않는 축복 받은 땅이다. 축복 받은 땅에도 매년 산불은 일어나는데 모두가 유칼립스 잎에 들어있는 알코올 성분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발화고 3개월이면 거의 다시 회복되기에 산불로 인한 피해는 여느 나라와 다르다. 그런 특성 때문에 호주는 자연발화가 되어도 우리나라처럼 헬기와 수많은 인원을 동원해 불길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이 세상은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꿈틀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는 창 밖에는 가이드의 설명처럼 군데군데 자연발화 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밑둥치는 시꺼멓게 거슬린 흔적이 있어도 위로 올라갈수록 푸른 잎을 생생히 달고 있어 유칼립스 나무를 두고 굳이 죽지 않는 나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슷한 풍경에 서서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가이드가 질문하나를 툭 던졌다. 말 위에 담요를 덮은 말과 덮지 않은 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그러면서 경주마로 유명한 호주 말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지금 뛰고 있는 경주마들 중 상당수는 이곳 호주에서 활동하던 경주마로서 대부분 은퇴한 늙은 말을 수입한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해주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세 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아침식사로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인지 두 시간을 채 달리지 않은 즈음에서 내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달리는 고속도로선상에서 내 상태가 이러니 차를 세우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호텔에서 출발한 시간이 예정한 시간보다 지연돼 여행 일정 중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 관광을 해야 하는 그곳 사정을 가이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되 내인 견딜 수 있다는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 말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준비해 온 물로 입안을 헹구고 껌으로 냄새를 제거한 후 4WD 짚 차로 갈아탔다.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해변에 실례를 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속은 한결 편안해졌다.
스톡턴비치에서 4륜구동자동차로 사막투어를 하는 기분이란 과장되게 표현해서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상쾌함과 통쾌함, 짜릿함이 온몸을 흔들어댔다. 굴곡이 심한 모래언덕을 오르내릴 때는 모두들 와! 하고 놀이기구 타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사막 한가운데서 펼쳐진 샌드보드타기(모래썰매)는 정말 재미있었다. 좀 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을 만큼 어느새 정상적인 몸 상태를 회복했다. 덕분에 일행 중 남녀, 나이 불문하고 두 번째 많은 횟수를 자랑할 만큼 샌드보드타기에 열중했다. 오래 전 출발 드림팀에서 한 번 선보인 후 호주를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는 샌드보드타기는 경사진 모래언덕에 올라 쵸코칠을 한 보드에 올라앉아 오로지 팔로 속도를 조정하는 놀이인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진주조개 잡이를 하러 차를 타고 해변으로 갔다. 파도가 밀려올 때 덩달아 밀려오는 조개는 모래를 파고드는 폼이 일품이었다. 물이 빠져나가면 죽기라도 하는 듯 혀처럼 쏙 내민 몸의 일부분을 순식간에 집어넣고는 모래 속으로 숨어들었다. 진주조개를 금한다는 팻말과 함께 적발되면 벌금에 처한다는 경고 문구를 뒤로하고 시드니에서부터 타고 온 차를 갈아타고 다음 행선지인 넬슨베이(Nelson Bay)로 향했다.
MOONSHADOW 선상에서 점심을 먹고 포트스테판 투어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돌핀크루즈에 나섰는데 맑고 푸른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돌고래가 이리저리 날뛰는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파도의 세기에 따라 출렁이는 그물망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체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선했다. 현지가이드는 몇 번이고 말했었다. 능력 있는 가이드만 주선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부러워하니 다른 사람 의식하지 말고 즐기라고,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냐며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15명 중 남학생 몇 명과 여학생 한 명을 제외한 사람들 모두는 수영복을 입고 남태평양 바닷물 속으로 풍덩했다. 처음에는 혹여 누가 볼까 싶어 주저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당히 자신의 몸매가 파도에 이리저리 노출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배 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부러움에서 그칠 수 없었던지 국적 불문하고 뒤늦게 짧은 반바지차림으로 뛰어드는 남자들과 아슬아슬한 비키니차림을 한 여자들 여럿이 합세했다.
자연 돌고래 떼 관광 후 호주 최대의 와인농장에 들렀다. 와인 시음 후 각자 먹고 싶은 와인 몇 병씩을 샀는데 이동과정에서 깨질 것을 염려해 나는 디저트와인인 아이스와인 2병만 샀다. 일반와인과 달리 냉장보관 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아이스와인은 일반와인보다 단 맛이 강해 초보자에게 권해도 좋은 와인이다. 시드니로 돌아와 한식으로 저녁을 먹은 뒤 호텔로 이동했다. 먼 거리를 이동해서인지 그 날 일정이 빡빡해서인지 아니면 움직임이 많았던 탓인지 몸은 피곤한데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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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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