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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그리운 아버지, 당신의 빈 공간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5. 6.

해마다 오월이 오면 내 가슴엔 채 아물지 않은 그리운 마음 하나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아버지...
가슴 속 깊은 곳에 파란 하늘로 남아있는 아버지...

 

중학교 2학년 봄,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어린 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커다란 별 하나가 상심한 가슴에 떨어져 그 깊이를 알지 못한 채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으로 한동안 참으로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수학, 국어 등 몇 과목에서 100점을 기록한 나는 반 친구들과 여러 선생님들께 예쁘장하면서 똑똑한 아이로 기억되는 소녀였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죽음과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고자 날마다 허무라는 빈껍데기를 안고 그 무엇에 빚진 사람처럼 쉬이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가 한때 나로 하여금 수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한 첫 번째 동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것도 늘 받기만 하는 입장에 있던 사춘기의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때 생긴 잠 못 드는 습관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오래된 벗인 양 날마다 친한 척 하며 끈질기게 내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타이머라는 약을 한동안 복용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험기간이외에는 그 약을 일체 먹지 않았는데도 나는 거의 습관처럼 새벽이 되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내 불면의 시작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집안의 큰 공백과 사춘기라는 심리전이 맞물려 빚어낸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 이후 내 마음 속 한켠에는 아주 깊고 너른 슬픔의 우물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서 밝고 긍정적인 소유자인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마냥 고독해지는 그 무엇과 간혹 싸워야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자취하는 내 작은 방에 찾아오셨습니다. 막내딸과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해 연탄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구멍을 더 열어두었습니다. 혹여 방이 추우면 아버지의 건강이 더 좋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저녁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든 아버지와 나, 방안이 너무도 더워서 아니 엉덩이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방 온도에 잠을 설쳤습니다. 덮고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치워보니 방바닥이 갓 구워 낸 빵처럼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린 참 행복했습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을 헤아리신 아버지는 제 작은 손을 꼭 쥐어주시고는
"우리 딸은 야무져서 뭐든지 잘 할 거야."
하시며 아주 오랫동안 제 등이랑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버지의 잘생긴 얼굴은 위암이라는 병과 싸워 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얼굴과 몸은 점점 더 여위어 가시고 끝내는 너무도 마르셔서 그 크고 쌍꺼풀 진 두 눈을 오히려 바라보는 것 마저 겁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바f람과 어머니의 애틋한 정성을 뒤로하고 5월 어느 날 아버지는 이 세상과의 고리를 끊고 아무도 기약할 수 없는 그 먼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5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달...
감사해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도 많은 달 오월...
어느 새 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몸살을 앓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립다 말을 하기에는 너무 작은 목청이 저 하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 만 같은 아버지에게 내 그립고 보고픈 마음의 울림이 다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청자 빛 고운 하늘로 오시는 그 고운 자태를 차마 지울 수가 없어 가만히 먼데 하늘을 응시합니다. 봄날 도려내고 씻어내는 아픔이 해마다 되풀이 된다하여도 나는 이 그리운 아픔을 사랑합니다.

 

살아 계실 적엔 내가 너무 어렸고 어른이 된 지금은 사랑하는 아버지께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살아생전 해삼과 추어탕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단 하루라도 아니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리운 아버지를 위해 추어탕을 끓이는 막내딸이 되고 싶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을 수북이 담아낸 밥그릇과 온갖 나물과 경상도에서는 제피, 전라도에서는 젠피, 이북에서는 조피, 그 밖에 지피, 남추, 진초 등으로 불리는 초피를 넣어 끓인, 내 정성이 들어있는 추어탕을 맛나게 드시는 아버지를 그려봅니다.

 

오늘은 그리움으로 내 가슴에 빨간 피 빛을 닮은 꽃 한 송이 핀다 해도
울어서 더 이상 흘릴 눈물 한 방울 남지 않는다 해도
그리운 그 이름을 목이 쉴 때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당신의 빈 공간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지만 아버지, 당신을 진정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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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06일 친정아버지 기일 날(음력 4월 13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