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칼릴 지브란과 메리 헤스켈의 사랑의 대화를 아십니까? 두 연인은 거의 모든 시간을 헤어져 있었지만 모든 시간 속에 그들은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고 해도 좋을. 오랫동안 그들이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는 약 500통에 달했으며 일기문만도 47편이나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대화는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칼릴 지브란과 메리 헬스켈의 사랑의 대화
‘사랑은 한 인간을 속박하는 시련입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마도 1990년 가을이었을 겁니다. 솔직히 그때는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한 책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십 년이 더 지난 요즘, 묵은 책인 이 책을 다시 꺼내 읽는데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아주 빠르게 그리고 진하게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는 이는 분명 한 사람인데 시간을 두고 읽는 그 느낌이란 참으로 달랐습니다. 느낌이 다르게 와 닿는 것을 나이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옹색한 변명 같지만 그러한 느낌에 어울리는 언어를 쉬 찾을 수 없음에 나이 탓 일 거야 라고 옹알이하는 어린애 마냥 입안에서 말을 굴려봅니다.
거의 만나지 못하면서도 어떤 이를 애타게 기다리며 감추어져 있는 그들 자아의 가능성을 이해해주며 믿어줌으로 항상 온 정성을 쏟도록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그들의 사랑의 시련을 읽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바 컸으므로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랑에 관해서 달리 표현하고 싶어졌습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억만 겁 세월이 흐른다 해도 이 땅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삶의 수수께끼로 남을 사랑, 존재하는 모든 것에 상대성 원리가 통한다면 사랑 또한 밝음과 어둠을 가진 존재로서 그 원리가 인정된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의 밝은 측면을 간단히 환희, 설렘, 행복으로 정의한다면 사랑의 어두운 측면은 두려움, 고통, 불행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는 감정의 굴곡도 더 깊이 더 넓게 헤아리다 보면 처음에는 모두 다 사랑은 아름답게 다가왔고 아름답게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자식도 제각각이듯 사랑도 뿌리라는 모체로부터 나오는 순간 수없이 뻗은 가지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 때문에 자신의 사랑이 다른 빛깔로 채색되기도 하면서. 나는 가끔 사랑을 가슴으로 헤아릴 때 표정을 그려 넣고 싶다는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이 듬뿍 담긴 내 눈빛에 지난밤까지 소식 없던 꽃잎이 어느 순간 활짝 열리는 것처럼, 내 말 한마디에 키가 쑥쑥 자라나는 나무처럼 내 사랑에 아름다운 표정을 그려 넣고 싶다는.
사랑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마력을 지녔지만 잘못 해석되는 사랑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할 수도 있는 독약 같은 그늘도 있지만, 사람은 사랑을 멀리하고 살 수 없기에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해 시련보다는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껴보려고 합니다. 하여, 사랑은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구속. 이 얼마나 황홀한 마음의 표현입니까?
어느 날 문득, 서로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설렘 하나 비집고 들어오면 시간의 능선을 따라 더 또렷이 더 가깝게 다가서는 그대라는 운명.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리하여 마침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영혼마저 송두리째 주어도 아깝지 않아 비로소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아,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끝없고 받아도 받아도 또 받고 싶은 아름다운 구속인 것을.
2001년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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