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0 : 페리요정
엊그제 저녁 우리 집에 감돈 이십 여분의 긴장에 대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엄마도 아빠도 네 마음 모르거나 이해 못하는 건 아냐.
네 말대로 1등 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너라면 잘할 수 있는데 하는 믿음으로
충고와 격려를 동시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 마음
너에게 온전히 다 이해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한번쯤은 엄마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조금만 신경 써도 전교 4등 하는 네가
이번 기말고사 시험에서 엄마아빠 기대를 어이없이 무너트린 결과를 얻고도
열심히 하겠다든지 죄송하다든지 하는 반응대신
"엄마가 지금 우리 반에 와서 시험 한 번 쳐보세요. 몇 등 할 수 있는지?
엄마도 서울대 못 갔잖아요.
나보고만 잘하라고 하지말고 엄마아빠 학교성적표를 보여주세요.
특목고 가서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꿈도 포기하고 싶어질걸요."
준비한 연극대사를 외우듯 나를 향해 쏟아낸 네 말에
어떤 식으로든 네 학습에 참여를 하는 엄마가 화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지...
공부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놀 때도 정말 즐겁고 신나게
뭐든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엄마가 너무 욕심이 과한 걸까?
자식이 크면 조금씩 포기도 하고 양보도 하는 거라고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사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니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널 믿고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게 옳을까?
토닥토닥 싸우듯 신경전을 벌이는 너와 나를 지켜보던 아빠도
네 말과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을 하셨는지
아빠의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씀하셨지.
"이제부터 아빠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학원비는 물론이고 그 어떤 지원도 해 줄 수 없으니 아침등교도 네가 알아서 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해왔지만 이제부터 우리 집은 행복은 성적순이야.
뭐든 원하는 게 있어 지원 받고 싶으면 공부해.
이희숙!, 학원 전화번호 불러, 공부하기 싫다는데 학원 다녀서 뭐해.
학원비 줬어도 필요 없으니 내일부터 학원 차량 오지 말라고 전화하고
이 달부터 생활비에서 신애 교육비 제외하고 넣어줄 테니 알아서 해..."
오죽하면 아빠가 그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평소 엄마인 나한테 욕심을 줄이라고 말씀하시는 아빠인데
너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크면 부모로서 해 줄 게 없다며 시간이 많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엄마는 너랑 재석이 시험기간이 가까워오면 더 많이 바쁘고 힘들어.
평소에도 잠자는 시간이 다섯시간 안팎인데
너희들 특히 네 컨디션에 따라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도 맞추어야 하는 엄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텔레비전도 멀리한 채 너희들 학습에 참여를 하는데
중간고사성적보다 많이 하락한 너에게
엄마로서 그 정도 충고는 할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제 아침,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집을 나서는 너를 보면서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엄마 마음은 많이 안타까웠어.
네 생각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애교가 더 많았으면,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그리고 어린 시절 날 닮은 야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갑자기 ‘야시’라는 말에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 엄마 어릴 때 별명이‘야시’였어.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불려진 별명이지만 내게 부쳐진 ‘야시’라는 별명이
내 일을 알아서 똑 소리나게 잘한다는 뜻에서 부쳐진 거라는 건 분명해.
긍정적인 뜻에서 불려진 별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신이 가지면 안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원하는 대로 이루고 마는 욕심쟁이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말을 거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고 싶었어.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다섯 살 위인 네 막내이모는
가끔 내게 "야시야!"하고 부르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싫지 않더라.
그만큼 그런 소리에 민감해하지 않을 만큼 세상을 살았다는 뜻도 되겠지만...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엄마아빠의 생각은 지금 네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을 이루려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거야.
엄마가 몇 번이고 말했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엊그제 아니 어제 저녁에도 말했듯이 첫째는 네 자신을 위해서
더 나아가 가족, 사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야.
광범위하게 네가 공부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엄마 더러 넌 말했었지.
"난 엄마처럼 애국자가 될 자신 없어요."
그 말 들었을 때 엄마 참 많이 부끄러웠다.
널 잘못 키운 것 같다는 생각과 널 과대평가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애야,
산다는 건 말이야.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더불어 사는 삶이 어떤 의미에서든 아름다운 거란다.
멋진 삶을 살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배경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한단다.
다음시험부터 노력하겠다는 네 말을 엄마는 거짓없이 믿고 싶어.
네 소중한 꿈에 네 의지와 노력으로 기쁘게 다가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줘.
엄마도 비교하는 말보다 너에게 도움이 될만한 학습법은 없는지
네가 읽어서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은 어떤 게 있는지
그리고 네 미래를 위해서 어떤 학원과 어떤 스승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해볼게.
사랑스러운 딸,
아직은 어린 너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해서 미안하다.
부모에게 있어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고운 행동하는 아이가 얼마나 어여뻐 보이는지
네가 커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보면 그 마음 알 거야.
엄마는 확실히 욕심이 많은가 봐.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안다.
엄마의 욕심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에
네 가슴을 뜨겁게 데워 널 꿈꾸게 하리라는 걸......
.
.
.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널 향한 내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엄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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