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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셋) - 이희숙

by 시인촌 2006. 7. 14.

늦은 밤에 만난 님의 고백으로 인해 
내 생애 가장 사랑 받았던 시절은 언제였고
그리움은 어떤 빛깔과 향기로 내게 닿아있는가에 대해서 
생각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어요.
열대야에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이 밤,
정직한 나를 만날 기회를 준 님에게 감사를 드려요.
첫사랑, 
그 시절이 가장 사랑 받았던 시절이라는 님의 고백 알 것 같아요.
설익어서 오히려 빛났던 시절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분명 하긴 했을 텐데 말이죠.
기억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내 속에 이기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증거겠죠.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시절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나간 어느 시절, 
누군가로부터 숨막히게 사랑을 받았던 순간이 있었다 한다해도 
오늘을 기쁘게 살아낼 힘을 내게 전하지 못하는 사랑은 
최고라든가 가장이라든가 하는 인정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만큼 현실을 중요시한다는 말이 되겠지만 말예요.

그리움에 대한 님의 생각 
"그리움..이란 것이 내겐 목에서 올라오는 피 같아.."
어찌 그리도 강렬한지...
순간 온몸이 굳는 느낌이 들었어요.
열정적인 여자라는 걸 진작에 알았지만 
오늘밤은 무서울 정도로 너무 뜨거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왈칵 드네요.
님의 뜨거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의 화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게 있어 그리움은 절반의 따스함과 절반의 애틋함으로 닿아있어요. 
그래서일까요. 
내 그리움은 화사한 봄날,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마시는 향 좋은 커피를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
비 오는 날 마시는 블랙커피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렇듯 내 속엔 내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철들지 못한 생각과 향기가 
여전히, 아직도 숨쉬고 있어요.
애써 그리움을 삭혀야 한다는 님의 말에는 찬성하고 싶지가 않군요. 
그리우면 그리운 데로 잊혀지면 잊혀지는 데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걸 
이미 오래 전에 알아버린 이유만은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살아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황량한 사막과도 같을 거예요.
갑자기 사막이 섬이 되어 가슴에 둥둥 떠 다녀요.
참 별일도 많지요.
섹스하면서 운다는 영화 속 그녀의 눈물을 알 것 같다고 했나요?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렸나요.
잠들지 못한 이 밤,
그리움의 이름으로 그리움을 불러내면 
내게도 영화 속 그녀의 눈물을,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보드라운 틈 하나 생길까요?
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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