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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넷) - 이희숙

by 시인촌 2006. 9. 27.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완전한 무장해제를 마음으로부터 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몇 번을 되물어도 
대답은 언제나 없다 아니면 기억이 없다... 로 끝을 맺는다.
스스로를 완전 무장해제(武裝解除)하며 사는 이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아주 가끔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구속하는 요인들을 멀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요 며칠 바람결에 전해 오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 본 이후로 
자의든 타이든 간에
스스로를 완전 무장해제 하는데 언제나 서툴렀던 이유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답답하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준 이도 없는데
속절없이 가슴이 무너진다.
미처 가늠할 사이도 없이 
대책 없는 아득함이 
삽시간에 비좁은 혈관을 타고 
멀미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살면서 이토록 속절없이 
가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지...
똑똑한 여자이기보다 지혜로운 여자로 남기를 원했던 나인데
요 며칠 마음과 달리 쏟아지는 말, 말, 말들의 표류로 인해 
마음 한구석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겁고 불편하다. 
이런 내 모습, 
누구보다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으니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사랑스러운 내 모습을 찾겠지만 
가을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위로하기에는 
달콤 쌉싸름한 갈증이 너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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