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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다섯)

by 시인촌 2006. 10. 14.

총각시절 쌍용그룹에 다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러시아로 사업한다고 떠났던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지금은 모 그룹 자동차 설계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어지간해서 나오는 법이 없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짠돌이로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 그는 지금 올 아파트 상승률이 전국 최고라는
경기도 안양 평촌에 두 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처녀시절 두산그룹에 다녔던 그녀는 
미스코리아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미인이라 그런지
목을 메는 남자들이 꽤나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외교관 집 자제와 결혼 말까지 오고갔지만
건축자재업을 하던 그녀의 아버지, 즉 나의 시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집안간의 차이가 나면 시집가서 고생한다며 부모님들이 앞다투어 결혼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학벌 좋고 집안 좋고 돈까지 많은
여섯 살 많은 남자의 끊임없는 애정표현에 결국 그녀의 오빠보다 먼저 결혼하기에 이른다. 
올해로 갓 마흔이 된 나의 시누이는
결혼해서 오랜 기간 동안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살던
신데렐라 신분상승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울에서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고 있어 사는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둘째 아들과 외동딸이 또래집단에 비해 살만한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시아버지께서는 둘째 아들과 딸집에서는 
하룻밤 단잠도 따뜻한 세끼 밥도 제대로 드신 적이 없으면서
큰며느리인 나와 큰아들에게만 투정을 부린다.
옳은 말일지라도 생각이 다르면 섭섭해서 곧잘 토라지고
식사 할 때도 입에 맞는 음식은 이거 좋아한다며 자주 젓가락이 가고
먹기 싫은 채소는 이건 안 먹는다며 다른 자리로 밀치기 일쑤인...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별것 아닌 것에 토라지는 어른을 보면
정말 왜 저럴까 싶다가도 기댈 구석이 있어야 비빈다는 옛말처럼
제일 편하고 마음 알아준다 싶으니까 저렇게 행동하겠지 생각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생겨 계신 동안 말벗도 되어드리고
올 추석 연휴동안에는 빛 축제와 안동국제 탈춤 페스티벌에도 다녀오는 등
좋은 시간도 많이 만들었지만 14일간의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어른의 뒷모습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왜 그리도 불안하고 안쓰러워 보이던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보내 드렸지만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이 목까지 차 올랐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랜 세월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던 시아버지도
그렇게 세월 앞에서는 한없이 여리고 여린 어린아이처럼 되어버렸다.
한해가 다르게 나이 듦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시어른을 보면서
기우는 해가 쓸쓸한 일만은 아니라고 애써 위로해보지만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친정아버지 몫까지 효도하겠노라 다짐하며
친정아버지처럼 대하겠노라 말씀드렸던 오래 전 어느 날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가 하는 깊은 반성의 시간을 햇살 좋은 이 가을에 만났다.

 


50년 이상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만 산 분에게
맏아들인 남편과 우리가족만 뺀 대부분의 인간관계
딸, 아들, 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서울이나 서울근교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로 내려와서 함께 살자고 만날 때마다 우길 수 없어
아직은 함께 살 때가 아니라는 어른의 뜻을 받아들여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생활비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원만 하고 지켜보고 있지만
언제고 오고싶을 때 와서 보름정도 머물다 서울로 돌아가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종종 불효자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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