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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여섯)

by 시인촌 2006. 10. 14.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인간애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는 영화라는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추석날 저녁에 봤다.
누군가는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생이 너무도 지루해
세 번씩이나 서둘러 삶을 마감하려고 했던 자살 미수자 유정이(이나영분)
비운의 사형수 윤수(강동원분)를 만나 그녀에게도 누군가에게 나눠줄 ‘사랑’이 있음을,
세상에 자신 몫의 사랑도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공지영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시작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애써 견고 하려 애쓰는 내 감정을 쉬 무너트렸다.
한번 무너진 감정은 물꼬를 튼 물길처럼 끝간데 없이 흘러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나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고 적힌 사진 한 장과
남녀 주인공의 마음과 상황이 나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가슴이 저려 통증을 느낄 정도로 울었다.
그러는 사이 힘들었으나 끝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내가 사랑하는 배경들을 포기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겨울,
서른 다섯 그 고운 나이에 내 인생 최대 위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손아래 시누이로 인해...
살면서 처음으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사람의 마음이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토록 무섭고 더러운 게 사람의 마음이라면
그런 사람들과 마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어느 한순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유서를 쓰면서 참 많이도 울었던 내 나이 서른 하고도 다섯 해 겨울,
나의 결백이 인정될 수만 있다면
내 목숨 송두리째 버리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시달린다는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처음 시작된 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살을 부쳐 온갖 유언비어를 탄생시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번갈아 가며 전화를 해 생활을 가능치 않게 했던
시아버지, 시누이 그리고 시댁 친척들...
한동안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친척들은 안 보고 살수도 있지만 아버지나 동생은 피를 나눈 사이니
안보고 살 수 없으니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한다는 남편의 간곡한 부탁에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가슴에 묻어버려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시누와 올케 사이를 떠나서라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좋은 관계로 남고자 
편지까지 하며 노력했던 내 모습이 그 때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죽고싶을 만큼 절박했던 그 순간에는 정말 그랬다.
내 마음과 상관없는 일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버린 나의 결백이 인정될 수만 있다면
내 목숨 송두리째 버리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두 아이와 가족이라는, 가정이라는 이름은
끝내 내 자존심을 생각하기에 앞서 어린 두 아이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그만큼 부모라는 이름과 자식이라는 이름과 가정이라는 이름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너그럽게 만들었다.
상처를 준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용서를 필요로 하는지 그 때 처음 알았지만

아직도 더 많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안에 공존하는 참을 수 없이 무겁고 겉잡을 수 없이 아파 오는
오래 전 기억으로 인해 홀로 아팠다. 
알 것 같았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너무 찬란해서 마주 보기 힘들다는 유정,
세상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거 같아 외로웠던,
그래서 삶보다 죽음이 더 간절했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살아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찬란함인지 그 마음도 알 것 같았다.
어느 한 시절 내게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적도 있었으므로...

 


마흔에 나이테를 몇 개 더 한 2006년 10월,
행복을 경영할 줄 아는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오늘,
내 삶의 노트에 이렇게 쓴다.
나의 행복한 시간은 언제?
살아있는 매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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