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병원을 가지 말 걸 그랬다.
가지 않았으면 속이 쓰려오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텐데...
병원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환자가 되어 나온다더니
그 말이 내게도 딱 들어맞을 줄이야...
심전도검사, 혈액검사, 소변검사, 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뭐 그리도 검사할 게 많은지,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는데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세시가 다 되어버렸다.
엄살과는 거리가 멀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위 내시경검사 할 때 수면(무통)검사를 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 내과로 가니 마주앉은 내 나이 또래의 의사가 하는 말,
"이희숙씨는 약해 보여 약을 조금 밖에 안 썼는데, 괜찮아요?"
"아직 좀...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제가 직접 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상담은 위 내시경 검사 결과 좋지 않아
조직검사와 균 검사를 더했는데 정확한 결과는 다음주에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위식도 역류질환(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그것도 상당히 많이 진행된 듯 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마취가 덜 풀린 탓인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가느라 집안청소, 세탁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 오시는 시아버지 맛난 음식이며 저녁 준비 등
내 정성을 필요로 하는 것들만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정신을 번쩍 차려야 하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만 달팽이처럼 웅크려 들어
의사의 처방전대로 약국에서 받은 세 종류 약과
의사선생님이 읽어보라며 준 소책자를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조금만 쉬었다하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침실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그렇게 잠시 누워 쉰다는 게 시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먼저 집에 들른 남편이
저녁밥 할 쌀 몇 인분 하면 되냐고 깨우기 전까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을 잤다.
십 대 초반에서 중반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바로 아래 동생인 삼촌이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시는 걸 겪은 후부터 어쩜 나도 참 좋은 나이에
이 세상과 영영 작별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이 세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 생각만 하면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두 뺨을 타고 이내 입술까지 점령해버렸다.
그렇게 잠시동안 눈물을 흘리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는 희열감을 맛보곤 했는데
그런 순간이면 어렴풋이 그리스어로 ‘정화’라는 뜻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제대로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결혼하기 이전에는 밥 굶는 걸 먹는 것 보다 더 많이 했던 나였지만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후부터 내 자신보다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 마음먹으며 하루 세끼 식사는 하려고 노력했는데
시시하게도 위식도 역류질환에 걸리다니...
근래 들어 기침과 흉통, 속쓰림,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 모든 증상들이 위식도 역류질환이라니...
아는 게 병이라고 병원을 다녀온 후부터 약을 먹어도 밥을 먹어도
속쓰림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더한 느낌이니
환장할 노릇이라는 말이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씁쓰레하다.
이럴 때, 나를 정화시켜 줄 눈물이 간절히 그립다.
그립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 새벽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지금
딱딱한 나무인형이 된 것처럼 내 몸 어디에도 눈물샘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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