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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사랑하는 이유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8. 30.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어느 날 문득 새삼 궁금한 얼굴로

왜 굳이 당신이어야 하는지 물으신다면

대답 대신 살며시 미소만 짓겠어요

내가 짓는 미소의 의미를 당신 스스로 깨우치기 전

성급한 마음에 또 물으신다면

대답 대신 가만히 당신의 눈을 바라보겠어요

그래도 마냥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자꾸만 당신을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느 순간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말하겠어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어느 날 문득 새삼 궁금한 얼굴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너머까지

구분 없이 사랑할 거라고 말하고

없음과 있음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사랑할 거라고 말하고

살아있는 그날까지 사랑할 거라고 말하겠어요

그래도 혹여 다음 말을 기다린다면

당신은 선택이기 이전에 운명이라고 말하겠어요

 

 

2003년 8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