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 이희숙367 생에 대하여 생각하다 - 희야 이희숙 산길을 걸으며 나무의 생에 대하여 생각한다아름답고 평온한 숲도 어쩌면그들만의 전쟁을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뼘 더 넓은 터전을 차지하기 위해한 줌 더 많은 햇볕을 얻기 위해바람처럼 흔들리며 밤새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삶은 원래 흔들리며 지켜내는 거라고그 무엇도 알려 준 적 없어도나무는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한없이 속으로 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숲은 나무들의 소리 없는 전쟁으로 푸른 산이 되고사람 사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걸음으로흔들리며 지켜낸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서로의 아름다운 배경이 된다 아름답다는 건어쩌면 흔들리며 지켜낸모든 생의 종착점다른 이름이 아닐까 2022년 - 喜也 李姬淑 2024. 6. 28. 추억이 바람처럼 길을 내며 지나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종갓집은 덩그러니 빈집만 남아 있지만,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에도 몇 그루의 나무와 야생화, 알뿌리 식물까지 용케도 살아 매년 꽃을 피운다. 부산에 사는 외아들인 오빠와 고향 근처 읍내에 사는 둘째 언니가 가끔 들러 청소도 하고 풀도 뽑고 나무도 손질한 덕분에 누군가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오 남매 모두 고향 집에 모였다.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니 19명 대식구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합천 한우와 흑돼지 잔치를 벌였다. 옆집에 사는 5촌 아재도 부르니 그야말로 어머니가 떠난 종갓집이 모처럼 활기차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저녁이 되자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동네에서 일찍이 기름보일러를 놓은 친정집은 식구가 없다는 이유로 .. 2021. 10. 24. 동안만이라도 - 희야 이희숙 꽃이 피어있는 동안만이라도웃자 웃어버리자이별한 적 없는 사람처럼 바람이 부는 동안만이라도잊자 잊어버리자사랑한 적 없는 사람처럼 비가 내리는 동안만이라도울자 울어버리자한 올의 미련도 남김없이 떠내려가도록 2020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23. 바람이 든다는 의미 - 희야 이희숙 울 엄마한테 옷은입고 벗는다는 행위 그 이상의 삶또 하나의 집이다고단했던 하루를 옷의 온기로 어루만져주고바람든 뼈마디 달래주는 비밀스러운 아지트 추분이 지나면 마디마디 바람 든다며겹꽃처럼 껴입어야 산다던 당신벗을 때마다 허물 벗듯 떨어지는 삶의 무게작은 체구에 어찌 다 감당했을까 뼈에 바람이 든다는 의미를예전에는 몰랐네, 정말 몰랐네!바람이 든다는 말은 시리다는 말이고시리다는 말은 아프다는 말임을아프다는 말은 외롭다는 신호인 동시에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 줄임표임을 2021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21. 코로나 19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말자 - 희야 이희숙 하루만 더한 달만 더참자 참아보자금방 지나갈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조금만 더다시금 더 힘을 내 기다려보자머지않아 봄은 올 테니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섬 속에 또 다른 섬이 되었다소소한 행복 눈뜬 채 도둑맞고 사랑도 힘을 잃고 돌아앉는다 몸조심하라는 당부, 잊어버렸는가오늘도 몇 사람 보이지 않네맘 놓고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죽음순서 없는 죽음 앞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나이도 묻지 마라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2021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17. 망각의 강 - 희야 이희숙 오랜만에 만난 친구섬처럼 커피잔 사이에 두고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을엊그제 일처럼 썰 푼다 풀어헤친다들쑥날쑥 바람처럼 드나들던 말은목적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길을 잃고강제 소환당한 어떤 하루가눈앞에서 맥없이 쓰러진다바람 한 점 일지 않았는데찢기고 뜯긴 흔적 역력하다 입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만 같은 문장찻잔 속 태풍이 되기도 전에서둘러 망각의 강을 건너는 그녀와해된 진실은밖으로 나오는 족족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2021년 - 喜也 李姬淑 2021. 10. 14. 이전 1 ··· 3 4 5 6 7 8 9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