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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깊고 낮은 읊조림(일백 스물 넷) - 이희숙

by 시인촌 2010. 9. 13.

지난주는 서울대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매일이다시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딸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제시한 문항에 알맞은 글쓰기를 요약정리해서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하면 더 드러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란 아주 간단했다.

문항마다 제시한 글자 수(1000자, 500자)는 잊어버리고

생각나는 대로 당당하고 솔직하게 쓰다보면 정리가 될 거라고...

  

유언비어든 사실이든 상관없이

서울대 자기소개서를 대필하면 500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지인의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마 그렇게 비쌀까 하는 생각보다

본인의 이야기를 남의 도움 없이 쓴 수많은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글을 수도 없이 읽어보고 고치고 하는 딸을 보면서

내가 한 행동이라곤 아이가 쓴 자기소개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1%의 도움을 주는 정도, 달리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고등학교 3년을 보내는 동안 이룬 업적(?)은

당사자인 딸아이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아이가 합격하면 고맙고 감사하겠지만

아쉽게 불합격한다 해도 나는 아이 편에 서서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에 칭찬 할 것이고

인생의 첫도전이라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에 대해 미소를 보낼 것이고

수없이 많은 날들이 너의 도전을 즐겁게 기다린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고

소신대로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것에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아이가 꿈꾸는 일이라면

학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으로 믿고 지켜 볼 생각이다.

설혹 꿈에서 깨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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