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진화한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보에 강해야 하고
흐름에 민감해야 하는데 전자기기만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기계치인 나도 편리하다는 이유로 남들이 사용 중인 전자기기들은 가지고 있는 편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에 니콘 D5000 DSLR 외
조작하기 간편한 디지털 카메라는 몇 대를 구입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여러 대고
PMP와 전자사전, 노트북은 물론이고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MP3는 벌써 세 번째 기기를 사용 중이다.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로운 전자기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연령과 상관없이 새로운 종류와 모델에 관심을 가진다.
정보에 어두우면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처럼 변화의 물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몇 달 전, 갤럭시탭이 소개되자 남편은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사업상 필요한 메일 확인 외 여행정보나 교육 관련 자료가 아니면
일 년 동안 컴퓨터 사용하는 횟수가 손을 꼽을 정도인 그 사람에게
갤럭시탭이 그다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16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011 번호를 바꿀 생각도 없으면서
갤럭시탭을 더 가진다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말처럼
가족공용으로 사용하면 된다는 말에 알아서 하라는 허락의 말을 하고야 말았다.
이동전화가 시중에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수첩이나 노트에 정리해두고
기억이 가물거릴 때 펼쳐 놓고 전화를 걸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자주 연락하는 이들의 전화번호를 몸에 밴 습관처럼 기억했다.
정보와 편리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은 전화를 걸 때 단축번호나 이름만 검색해도 알아서 되니
굳이 외울 필요도 수첩에 기록해 둘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때문에 셀 폰을 잃어버렸을 경우 자주 연락하는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해
한동안 단절되는 경우를 더러 목격하기도 하고 경험담을 듣기도 했다.
이와 같이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것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기능은 있는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친숙하고 정이 넘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 되고픈 나의 바람은
늘어만 가는 최신형 전자기기들에 비례해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세상과 사람간의 소통을 위해 다 버릴 수는 없어도
가끔은 잉잉대는 소리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롭고 싶다.
이런 생각은 오전 10시가 다되도록 셀 폰 켤 생각을 하지 않는다거나
식구들이 다 돌아온 저녁시간이면 전원을 꺼버린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럭시탭을 만지작거리는 남편을 못 본 척 하는 건
나이 든다고 해서 감각도 뒤처지라는 법 없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까닭이요,
가족에게 성실한 남편의 취미쯤으로 인정한 때문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아이들 공간인 아래층에 모여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나는 내 전용 노트북을 펼쳐 놓고 토닥거리고 있고
남편은 갤럭시탭으로 온갖 정보와 세상을 만나고 있고
수험생인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 읽었던 헤리포드를 다시 읽고
아들은 PMP로 영화를 보고 있다.
단절되지 않으면서 각자의 취미와 시간을 인정해 주는
함께 따로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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