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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본능(instinct)과 욕망(欲望 desire)에 관하여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4. 14.

최근 며칠 동안 우리 집이 시끄럽다. 시끄러운 소리의 주범은 작년 늦가을 생후 50일된 진돗개 두 마리를 사 가지고 왔는데 그 진돗개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넘고 보니 몇 달 전부터 암컷은 생리를 시작했고 수컷은 발정기를 경험하게 되는 몸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올 시월은 유난히 수컷의 발정기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넘어 보는 나로 하여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 누구라도 외출했다 돌아오면 반갑다는 표시로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모아 깡충깡충 뛰던 것도 못 본체 시큰둥하고 특별식으로 주는 생선과 살이 붙어있는 갈비뼈를 주는 날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처럼 빨리 달라고 특유의 보채는 소리를 내던 것도 잊어버린 듯 맛있는 먹이를 보고도 거의 입에 대지도 않고 오로지 모든 관심을 암컷에게만 집중시켜 처음에는 며칠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어제는 암놈을 개집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앞에서 지켜 몸은 묶어있지 않아 자유롭지만 수컷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암컷을 위해 평상시 수컷이 좋아했던 과자나 과일로 유인해 잠시나마 암컷을 편하게 하려고 했으나 먹이마저 포기하며 암놈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쩌다 수컷인 백구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암컷인 나래가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성난 사자나 호랑이 같은 표정을 하기 일쑤고 틈만 나면 암컷의 엉덩이로 돌입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만 노려보지만 암컷인 나래는 수컷인 백구의 행동에 더 한층 날카롭게 반응해 요 며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집안으로 들고나는 도중 백구랑 나래와 눈 마주치면 입으로는 반갑다는 인사를 하지만 눈은 어느새 수놈의 몸 상태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하루 종일 수컷의 성기가 힘차게 뻗어있는 걸 보면 안쓰러운 마음과 새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암컷이 수컷의 행동에 저지하는 반응대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암컷은 도통 협조를 하지 않아 언제쯤 이 전쟁이 조용 해 지려나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언젠가 암컷의 식욕이 왕성해지고 살이 쪄 이제야 비로소 백구와 나래 2세가 탄생하는구나 하고 가족 모두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나래 몸집은 그대로이고 커지는가 싶던 젖꼭지도 그대로여서 임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며칠 전 유난히 으르릉대며 서로 못 잡아먹어 난리를 치던 날 개집주변을 물청소하다가 나래 생리흔적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이즈음에서 나는 본능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집 진돗개인 백구나 나래가 보여주는 본능은 반사작용과 같이 선천적이면서 몸과 환경에 대해서 느끼는 초기단계의 경보시스템과도 같은 것이어서 특정한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고정된 행동약식으로 동물뿐만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배우고 익히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환경에 적응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사 작용이 단순하다고 한다면 본능적 행동은 정교하며 순서가 있는 일련의 동작들로 구성되는 복잡성을 지니지만 교육에 의한 후천적이 아닌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이다.

 

일반적으로 욕망(欲望 desire)은 동기의 실현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억제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동기의 유무는 형벌상 중요한 뜻을 가지게 되어 의도적인 범죄행위는 엄격하게 처벌된다. 심리학에서 같은 개념으로 Frustration(욕구저지·욕구불만)이 있는데 이는 목표하는 행동이 어떤 조건에 따라 저지당함을 뜻한다. 그 결과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한 공격적인 행동 등이 나타나는데, 이는 S. 프로이트가 사용한 이상행동을 해석하기 위한 가설이지만 욕망과 유사한 상태이다. 프로이트가 욕망은 이성(理性)을 지닌 사람이라면 물리쳐야 할 저급의 정신활동이라고 한 것에 반해 J.P. 사르트르는 욕망은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추구하여 결함이 없는 존재로 되고 싶어 하는 정신활동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여기서 나는 욕망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자 한다. 대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풀어야 할 숙제처럼 욕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여유를 한번쯤 가져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욕망이라는 이름의 불덩어리를 가슴에 지니고 산다. 개개인마다 품고 있는 욕망의 빛깔과 크기는 다르지만 욕망의 깊이를 파고들면 남보다 더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사랑 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쁘고 잘 생긴 외모를 가지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욕망 등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욕망도 어쩌면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싶다는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종종 우리네 사람들은 욕망의 화신인 욕심의 싹을 키우지 말아야한다든지 누구와 비교를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잘 알고 있는 이웃들과 친척들 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더 많은 비교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능과 욕망은 마흔을 넘긴 내게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질을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했다. 가령,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여성으로서의 본능과 욕망은 참고 기다려야 할 때와 느끼는 그대로 거리낌 없이 표현할 때를 분별할 줄 알게 해 내 안에서 파도치는 감성들을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나를 읽어 내릴 줄 알게 했으며 환경 적인 요소에서 느끼는 본능과 욕망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으며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남들보다 더 안정되고 멋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끝끝내 버릴 수 없고 멀리 할 수 없는 욕망을 자신의 성장과 사회, 국가, 인류발전을 위한 기회로 이용하라. 분별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멸망케 하거나 더 나아가 사회를 병들게 하기 전에......

 

 

 


2004년 어느 가을날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