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무렵 은행으로 가기 전,
빨강 신호등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빨강 신호등은 기다려요. 혹은 금지
파랑 신호등은 건너요. 또는 긍정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규범 속에 숨어 있는 색깔말고
살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
생각이란 놈은 꼬리에 꼬리를 문 긴 행렬처럼
오후시간이 다 가도록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내가 가는 곳 어디든 졸졸 따라다녔다.
‘오늘은 색깔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생각을 앞세우고...
오늘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그림은 어떤 색채였을까?
우스운 얘기지만 오늘은 정열적인 빨강 색은 사양하고 싶다.
붉은 열정보다 바다를 닮은 파랑과 녹음 우거진 산 빛을 닮은 녹색과
몇 일전 꽃을 피운 보랏빛 도라지 색깔이 되고 싶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파랑에 녹색에 보라로도 모자라
자꾸만 흰색이 되고 싶다고 우기고 싶은 마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내가 원하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 철없는 마음을...
2001년 0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