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리던 비마저도 쉬고 싶은가 봅니다.
일기예보와 맞지 않게 해님이 간간이 내리쬐는 걸 보니 말입니다.
정말 오늘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날입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아온 탓이라고 혼자 위로하며
친정어머니께서 해온 쓴 한약을 아무런 저항 없이 단숨에 꿀꺽하고 삼켜 버렸습니다.
이제 내 뱃속은 시꺼먼 한약이 몸속 구석구석 쉼 없이 여행을 할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뿌린 말의 씨앗이 어쩌면 조금 전에 마신 쓰디쓴 한약의 빛깔을 하고
내 안에서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요 며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한발 물러서서
타인을 대하듯 나를 느껴보려고 애를 써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참 많이 행복했고 내 행복에 대해
단 한 번도 거짓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깨어보니 내 삶의 등압선이 타인에 의해
조금 다른 향기로 엷어져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낯선 느낌입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철 모르고 취한 내 행복에 대한 청문회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리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복병처럼 나타나는 뜻밖의 것들로 인해
더 많은 인내와 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시간 속에 나도 모르게 갇혀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추고 싶지가 않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계속 그 끝이 어디에 닿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쉼 없이 흐르게 하고 싶습니다.
고여서 더 이상 맑은 물이 될 수 없는 호수가 아니라
흐르다가 가끔 바위에 부딪히고 나뭇가지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지금껏 해 왔듯이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글을 쓴 목적이 순전히 나를 찾기 위한 나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희망의 불씨하나를 가슴에 정성스럽게 심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대하는 눈빛과 마음이
이전 보다 더 따뜻하고 깊어지기를 바라면서
또한 내 삶의 등압선을 자유자재로 그려 넣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01년 06월 25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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