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의 나이를 넘긴 지금에도 인연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릴 적 무지개를 볼 때 느낌처럼 내 가슴은 하염없이 뛰거나 혹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뻗쳐오는 서늘한 기운으로 인해 불현듯 목이 메이고 콧날이 시큰거리는 묘한 감정에 종종 사로잡힌다. 매번 이렇게 경계짓듯 심리상태가 뚜렷한 건 아니지만 문득 스치듯 쏟아지는 감정들이 가을바람처럼 순식간에 내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오면 내 안 곳곳에서 유영하는 여러 빛깔의 언어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지나간 시간 속으로 먼 여행을 하기도 한다.
내게 있어 인연이라는 말은 사랑, 희망, 그리움 다음으로 좋아하는 언어다. 내가 특별히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타고난 천성이 보드랍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는 동시에 사회적인 동물로서 살아가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탓이요 더 나아가 좋은 인연을 맺으면 한 사람의 인생을 무궁무진한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까닭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해바라기 씨만큼이나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인연들을 하나 둘 떠올릴 때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우물에 두레박을 넣어 차고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듯 기억 속에서 점차적으로 잊혀져 가는 사람들과 지금 내 가까이 에서 함께 웃으며 서로의 이름을 반갑게 기억해 내는 이들의 이름을 나직하지만 정성을 다해 불러보곤 한다. 그들의 이름은 내 입에서 말로 나오는 순간 어여쁜 꽃잎이 되어 향기로운 꽃 향을 내뿜기도 하고 쉴새없이 맑은 노래를 지저귀게 하는 삶의 선물로 변하기도 하지만 어떤 인연은 이름 석자를 미처 다 부르기도 전에 가슴을 콕 찌르며 바람처럼 어디론가 달아나기도 한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좋은 사람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가 인연이라는 범주에 속하지만 인연과 인연이 만나서 한 사람의 생활이 되고 삶이 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 순간적으로 긴 호흡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처럼 엄숙하기까지 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지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되며 진정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친 인연과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혹여 라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이에게 있어서 아픈 인연이나 슬픈 인연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지난 달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만난 아름다운 두 여인과 불혹의 나이를 살아오는 동안 내 삶을 많이 변화시킨 몇 안 되는 인연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2000년 필자가 Daum 칼럼 여성부문에서‘그녀는 특별하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쓸 때 알게된 두 여인 중 한 여인은 서울태생이지만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고 다른 한 여인은 일산에 살고 있었는데 두 여인 모두 나랑 생각하는 주파수가 비슷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늘 가까이서 마주치는 사람처럼 아주 가깝게 느끼고 있었던, 내게 있어서 생각이 통하고 느낌이 통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고싶은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속해 있었던 그녀들...
캐나다에 살고 있었던 여인은 우리나라에 방문할 기회가 생겨 서울에 머무는 며칠 되지 않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차를 타고 우리 집을 방문해 나로 하여금 아름다운 만남에 대한 예쁜 기억하나를 가슴에 수놓아주었고 다른 한 여인은 2001년 여름의 초입에서 내가 먼저 비행기를 타고 그녀의 일산 집으로 놀러가 처음 만난 어색함 없이 아름다운 일산호수공원에 앉아 일요일 오후 한때를 즐겁게 보내다 돌아오기도 하고 그녀 또한 어느 햇살 좋은 날 우리 집으로 놀러 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인연에 대한 고마움과 만남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 작년에는 그녀의 가족들이 경주여행 하는 길목에 위치한 대구 우리 집으로 함께 놀러오기도 하여 매년 한 번씩은 얼굴 마주 할 수 있었던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이렇게 몇 년에 한번 혹은 일년에 한 번 만나는 우리들이지만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세 여자는 친구라 서슴없이 부르며 보고 싶어한다. 흔히들 여자 셋이 모이면 그 수다스러움에 그릇이 깨진다는 표현을 하지만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삶의 태도가 분명한 여자 셋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는 삶과 사랑, 여자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으며 표현 또한 진솔했다고 그 날의 만남을 즐거운 마음으로 떠올려 본다.
세 여자를 내 나름의 느낌으로 분석한다면 2년 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영구히 귀국해 일산에 삶의 터전을 잡은 친구는 훤칠한 키에 목이 긴 멋스러운 여인이다. 나만큼이나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종종 깊고 따스한 가을 색채와 우수에 어린 여린 그늘을 동시에 느낀다. 하여, 나는 그녀를 순수한 가을 여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가을 동안만큼은...
또 다른 친구는 웹 상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닉네임만큼이나 통통 튀는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가 매사에 긍정적이고 분명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으로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여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와 통화를 하면 덩달아 기분이 상승되는 걸 느끼는 나는 그녀에게서 자주 정열의 계절 여름을 떠올리곤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인 나는 아담한 체격의 소유자로서 귀엽거나(?) 혹은 여성스러운 느낌이 몸에 베인 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늘 보수와 개방,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적당히 긴장하며 사는 나는 감성적으로는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순수를 꿈꾸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두 여인 모두 나만 알고 지낸 친구사이였지만 올해 초봄 같은 일산에 산다는 이유로 내가 중간에서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소개해 주어 지금은 멀리 대구에서 사는 나 보다 같은 도시에 사는 그녀들의 왕래가 더 잦은 편이다. 두 친구 다 내게 좋은 친구를 소개시켜 고맙다고 인사할 정도니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만난 세 여자의 닮은꼴이 있다면 비슷한 시점에 태어나 생일이 같은 겨울이라는 점과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점,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도 여자로서의 느낌이 강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는 울타리를 사랑이라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며 가꾸어 나갈 줄 아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마주치면서 부딪힌 인연들을 가끔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고마웠다 라는 따스한 느낌이 마음 가득 차 오른다.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불혹의 나이를 살아내는 동안 이렇게 나는 좋은 사람들 속에서 숨쉬고 웃고 울면서 성장해 왔다. 내 삶을 행복으로 물들게 한 인연들... 그들은 때로는 내게 있어 무한대의 하늘이 되어 주었고 너른 강이 되어주었으며 끝없이 샘솟는 샘물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어떤 인연은 때때로 내 마음에 서늘한 기운을 선물해 산다는 건 마냥 꿈결 같이 어여쁜 행복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기도 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어느 겨울날이 생각난다.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수녀가 되어 내 인생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생각의 발자국을 따라 찾아간 충남 당진에 위치한 작은 성당... 그 곳에서 마주한 인연들과 보낸 사흘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추억으로 늘 내 가슴을 따사롭게 한다. 내 존재의 이유를 뼈 속 깊이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 언젠가 꼭 한 번 찾아뵈어 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다짐하며 다시 찾은 그곳에는 이 십대 초반에 만났던 인연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 지 오래여서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고 내 가슴 한켠에 늘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디 내게 있어 그들만 아름다운 인연이겠는가?
사춘기시절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뼈 속 깊이 품게 해 준 내 아버지...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남편...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끊을 수 없다 해서 천륜이라 부르기도 하는
내 어머니와 내 사랑스런 두 아이...
문득 좋은 인연을 만나는 일은 내가 만든 세상 속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멀어서 닿을 수 없는 하늘처럼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만날 수 없는 인연들도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 함께 호흡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 지난달 만난 두 여인과
나라는 사람이 지닌 여러 가지 색감을 그대로의 깊이로 인정해 주는 사람...
그리고 내 삶 중심에서 나를 웃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한 사람들과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늘 건강했으면 하고 가끔 떠올리는 추억 속의 인연들과
얼굴 한 번 마주한 적은 없지만 웹 상에서 알게된 인연들...
모두 모두에게 나직하지만 깊고 따스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들로 인해 내 삶이 더 풋풋했으며 따스했노라고......
2003년 09월 20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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