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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아름다운 나이 불혹(不惑)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16.
누군가 내게 당신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가 언제 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주저함 없이 지금의 내 나이 마흔 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사람에게 있어서 아름답지 않은 나이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나이를 가장 아름다운 나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읽어 내리는 사람 중에 어떤 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닌데 라고 입안에서 소리나는 말들을 굴릴 것이고 어떤 이는 그럴지도 모르지 라는 생각에 잠시 자신을 돌아보며 가장 아름다운 나이가 언제였던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나이, 성별이 같다고 해서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듯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 다양한 소리들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이의 말을 받아들일 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마음의 창이 열려있는가 혹은 닫혀있는가에 대해서 논하기 이전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 사람의 인격체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의 연결선상에서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가 언제인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주입시키기 보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바라보는 평소 내 생각을 하나 하나 풀어놓고 싶을 뿐임을 밝혀둔다.


불혹(不惑), 어린아이의 맑은 순수는 없다 해도, 아름다운 오류를 통해 한 발 한발 자신의 꿈에 가깝게 다가가는 청소년기는 아니어도, 이 십대의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도전의 나이는 아니어도,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품고 사는 희망의 삼 십대는 아니어도 아래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위로는 상사들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샌드위치 같은 위치로 인해 다수의 고독한 사 십대가 생기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전반에 걸쳐 사십대의 영향이 아니 미치는 곳이 없는 현실이고 보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불혹의 나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경험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위에서 언급한 다수의 고독한 사십대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여성보다는 남성들을 먼저 기억 할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여성보다도 남성위주의 사회구조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제 경제인구가 여성보다는 남성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21세기는 다양한 직업의 생성으로 인해 이전보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고 실제로 여성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실 속에서 꼭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 분담과 위치에 대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이렇다 라는 식의 결과론보다는 우리 인생에서 사 십대 라는 나이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한다.    


사실 사 십대라고 하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이루고 있어야 하는 계층이지만 가정적으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투자해야 할 지출이 점점 늘어나고 사회적 불안 요소로 인해 직장에서의 위치조차도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사 십대는 어찌 보면 가장 힘든 세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남성들은 퇴근해 집에 들어오면 아내인 여성에게서 누구네 집엔 무엇을 샀고 누구네 집엔 어디로 여행가고 다른 아이들은 학원을 몇 개 다니고 쉬어야 할 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말들을 수 없이 들어야 하고, 아내 혹은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여성이 직업을 병행했을 때 퇴근해 들어와서도 주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가족들로 인해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에 부딪혀 가정이 편안한 쉼터가 아니라는 생각에 작은 일 하나에도 서로를 배려하기 보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의식구조로 전환한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아무튼 대한 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안에서 살고 있는 사십대는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 속에서 세상살이에 지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는 제 2의 사춘기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듯 싶다.


인생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지칭하는 불혹의 나이를 가정에서 먼저 인간적으로 따스하게 껴안아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다. 각자의 시각과 아집에서 벗어나 상대의 말에 귀를 귀 울일 줄 알아야 하며 격한 상태에서 서로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내 생각은 이러하다 라고 상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이해를 받을 수 있으며 조언과 함께 격려를 받을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많은 것들이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인격체와 다른 인격체가 만나서 가족을 이루고 더 나아가 하나의 집단 혹은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먼저 열려있는 사고로 가정과 직장에서 맞닥트리는 갈등을 풀어헤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문득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그늘을 만들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봄날,  숨죽이고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 보라. 지나온 과거가, 그늘진 삶이 펼쳐지지 않은 미래를 향해 들끓으며 부딪히며 날기를 원하는 수많은 소리와 몸짓을... 더 이상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경험하는 사 십대가 아닌 자신의 이름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아름다운 사 십대가 되어 보자.


《論語》‘위정편( 爲政篇)'에서 공자(孔子)가 회고한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았고 四十而不惑, 이 말 앞에서 인생에서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는 완전한 삶을 추구하고자 했던 공자의 지혜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사 십대는 고독한 중년이 아니라 완전한 삶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향기로운 나이라는 사실을......




2003년 03월 24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