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글을 쓰면서 내게도 바람이 생겼다.
그 바람이란 것은 어찌 보면 평소 내 생각을 이끌어 내고 싶은 욕심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슴과 머리가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연작으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가장 먼저 내 머리 속을 흔들어 놓은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사랑이라는 단어는 글자로서의 기능을 뛰어 넘어
감정이 개입된 시간 속에 인연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빛깔과 향기로 다가와
완전한 사랑, 영원한 사랑, 정신적인 사랑, 몸 사랑,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등 변신의 귀재라고 이름 지어 불러도 좋을 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모습을 바꾸어가며 이러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음과 모음의 합성어가 아닌 감정이 흐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어디 사랑의 종류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지켜볼게 하는 식으로
은근히 내 자존심에 불길을 당겼다.
사실 사랑을 종류라고 하는 것부터 모순일지도 모른다.
분명 모순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크게 몇 종류로 나누고 싶다.
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과 불완전한 사랑,
냉정한 사랑(혹은 이성적인 사랑)과 열정적인 사랑(혹은 감성적인 사랑)
그밖에 부모자식 간에 이루어지는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헌신적인 사랑과
남녀 간에 이루어지는 선택, 사양에 해당하는 조건부사랑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한다.
사랑에 관한 한 저마다 생각하는 주파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완전한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 정신적인 사랑을 함께 묶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맹목적이라고 할 만큼 헌신적인 사랑 안에 완전한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을 구분 없이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똑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한 선생님한테 배우는 학습효과도 천차만별로 나타나는데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저마다 겪어 온 사랑에 대한 경험이 다른데
어찌 사랑의 빛깔과 향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수학방정식처럼 이것이 답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있겠는가?
정답 없는 사랑을 크게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말하여 진다는 게 어쩜 아름다운 오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명한 모순덩어리를 인식한 채 평소 내가 느낀 생각을 피력하고 싶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삶 속에서, 사람들 관심 속에서 멀리 할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몸 사랑(Body Love)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흔히 몸 사랑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긴장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의 유희와 눈빛의 교감 등
때와 장소 혹은 사람에 따라 수없이 다른 언어로 표출되는 통속적이고 은밀한 성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혹여 이 글을 읽어 내리는 사람들 중에 대단히 쇼킹하거나 끈적거리는 느낌의 충격파를 기대했다면
그건 잘못된 계산임을 미리 밝혀 두고 싶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몸 사랑에 대한 꼬리표를 달자면 ‘ 표현하는 사랑은 아름답다. ’ 이다.
몸 사랑, 많은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성(sex)은 사실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일 듯 말 듯 여인의 실루엣처럼 환상적이면서도 은밀한 이야기가 바로 몸 사랑이기에,
그런 이유로 조심스러운 몸 사랑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부부라는 허락된 특정집단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성(sex)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히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했을 때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성이라고 하는 것은 음악이나 미술기법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해서 다 말하여지는 게 아닐뿐더러
아직도 우리사회는 성을 이야기할 때 미풍양속에 위배되지 않는 정숙함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사회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의 몸은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서서히 혹은 격렬하게 상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이것은 몸 사랑의 특권이자 신이 만든 최고의 선물이다.
몸 사랑이 정신적인 사랑에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느낌의 언어,
즉 무언의 몸짓이 주는 평화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한다.
가령, 몸 사랑을 한 직후 아무런 잡념 없이 빠른 시간에 숙면에 취할 수 있다는 걸 하나의 단적인 예로 들어보자.
잠을 잘 자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바이오리듬이 왕성해져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 할 수 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이 개운하면 그날 하루일과도 자연히 즐거울 것이다.
물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주고받는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말의 깊숙한 면을 파고 들어가 보자.
몸 사랑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살갗과 살갗의 만남은 단순히 행위를 넘어선 마음의 안정을 주는
정신적인 비타민제로서의 기능까지 한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또 어떤가?
이 말 역시 그 깊이를 파고들면 몸 사랑의 중요성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부부간의 애정친밀도는 뭐니 뭐니 해도 몸 사랑에서 최고조를 이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몸도 한 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것과 같이 세심한 정성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지는 게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조건적으로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라든가 손해를 보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을 연출하라는 말이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듯도 하지만 ‘표현하는 사랑은 아름답다’ 는 제목의 부부간의 몸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지는 게 이긴다는 말의 숨은 지혜를 적용하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면서
몸 사랑을 할 때 특별히 좋은 느낌을 가지는 성감대도 개인차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어 내리는 사람들에게 나직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말은 곧,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싫어하는 행위를 어느 한쪽이 특별히 좋아한다면
상대를 배려하는 몸짓의 언어는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다는 뜻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게 될 것이고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자신도 덩달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 테니......
행복은 함께 만들어갈 때 더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는 사실, 이 평범한 사실은 몸 사랑에서도 예외 일수는 없다.
이 글을 읽어 내리는 분들 중 이미 눈치 채셨을 테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몸 사랑은 특별한 기교나 행위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몸 사랑이란 정신과 육체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뿐.
변강쇠가 아니어도 좋고 요부가 아니어도 좋다.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열린 마음으로 몸짓의 언어를 즐길 줄 아는 지혜를 내 안에서 터득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적어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면, 좋으면 좋다고 소리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은밀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몸 사랑에 관한 자신만의 코드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배우자에게 자신의 몸 사랑에 관한 정확한 코드를 알려주어
상황에 따라서는 요구할 줄도 아는 솔직함도 지녀야 할 것이다.
부부의 삶이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지만
정신하나만으로 존경받는 흡족한 부부의 삶을 논할 수는 없다.
이해와 화합이라는 닮은꼴의 정신적인 사랑을 바탕 골격으로 하되
몸 사랑 또한 충만하게 넘실거려야 비로소 완전한 사랑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음에.
우리의 몸은 때때로 정적인 순수보다 동적인 열정을 원하기도 한다는 말을 끝으로
수박 겉핥기식의 나열방식이 되어버린 부부간의 몸 사랑에 관한 미흡한 이야기를 이즈음에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2003년 06월 11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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