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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학 개론

야누스의 두 얼굴 ‘이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4. 26.

부제(사랑할 때 꼭 버려야 하지만 끝끝내 버려서도 안 되는 그 무엇)


 

 

언제인가부터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불의 여신 펠레(Pele)가 화내면 폭발한다는 화산섬 앞에 선 것처럼 팽팽하게 긴장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한 느낌은 종종  내 사랑이 폭발하는 화산섬은 아니어도 불처럼 뜨겁고 파도처럼 치솟는 ‘미친 사랑’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친 이란 표현은 느껴지는 어감과는 사뭇 다른, 열정이란 표현을 좀 더 절절하게 표현한 말이란 것을 밝혀 두며‘사랑할 때 꼭 버려야 하지만 끝끝내 버려서도 안 되는 그 무엇’에 관해 내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 나는 궤도를 벗어난 무인로켓처럼 뜻밖의 이탈을 경험하고 싶은 미친 사랑이 하고 싶다.  매순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어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들리는 사랑에 관한 내 생각들이 먼 장래 우연한 기회에 변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심장이 열정적인 사랑을 위해 살아 펄펄 뛰고 있다고 느끼며 살고 싶다. 

 

곳곳에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어 봄이라고 서둘러 말하기엔 어색한 어느 날 누군가와 전화통화 중 "사랑할 때 꼭 버려야 하지만 끝끝내 버려서도 안 되는 것" 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수화기 저편에 있는 상대방의 입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그 짧은 동안 내 물음에 대한 정확한 의도를 알고 있는 것 마냥 ‘이성’이라는  반가운 대답을 했다.

 

그렇다. 사랑을 할 때 꼭 버려야 하지만 끝끝내 버려서도 안 되는 것은 바로 ‘이성’이다. 물론 이런 내 생각에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모두 동의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특히 남자와 여자사이를 좁혔다 넓혔다 하는 간격의 자는 바로 야누스의 두 얼굴을 하고 있는 ‘이성’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사랑을 할 때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이성은 적정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몸사랑 측면에서 보면 이성은 지극히 어색한 옷을 입은 것 마냥 불편할 수도 있다. 하여, 나는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성의 옷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갈아입을 줄 아는 센스(sense)를 발휘하라고...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사이에 이성이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들의 사랑은 오래도록 변치 않을 신뢰를 선물로 돌려받을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성이라는 이름의 도덕적인 옷을 입은 탓에 가슴 설레는 감동대신 의무만 무성한 사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대로 서로 안에 있는 이성을 남김없이 부수어 버릴 때 그들 사이에는 불같은 사랑이 타올라 한동안 그 무엇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겠지만 그 사랑 역시 서로의 색깔을 상대에게 들킬 즈음이면 유예기간이 짧은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

 

사랑함에 있어 어느 한쪽만 치우치다보면 무미건조한 혹은 식상한 사랑에 자칫 빠지기 쉽지만 머리로 하는 사랑과 가슴으로 하는 사랑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연출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더 건강한 에너지로 넘쳐날 것이다. 하여, 나는 사랑할 때 꼭 버려야 하지만 끝끝내 버려서도 안 되는 그 무엇, 야누스의 두 얼굴을 하고 있는 ‘이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 특히 남자와 여자사이의 적정거리를 위해 이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지만 사랑하는 남녀사이에서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완전무장해제를 할 시점을 만난다면 가슴 가득 꼭 쥔 이성의 고삐를 풀어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므로...

 

지금 이 순간 나는 생각한다. 내 사랑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지닌 ‘이성’의 옷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갈아입을 줄 아는 센스(sense)를 발휘하고 있는지, 더불어 오늘 나는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미친 사랑’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이 노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2004년 04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