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완전한 사랑은 이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무형의 마음과 언어에 대한 반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이라는 말은 문자와 언어라는 것이 생성된 이래 지식층에 의해 혹은 보통사람이라고 불리 우는 대중들에 의해 언어와 성별, 나이, 더 나아가 국가와 개개인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왔으며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 될 것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사는 이 지구 상에는 ‘완전한 사랑은 없으며 불멸의 사랑에 대한 소망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결론을 전제로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어 내리는 분 중에는 아마도 완전한 사랑은 있다고 믿거나 믿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사랑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희망이 된다고만 이야기하고 싶다.
완전한 사랑은 말 그대로 완전한 사랑이어야 한다. 완전한 사랑은 불안한 사랑이어서도 안되고 이루지 못할 미완의 사랑이어서도 안되며 무조건 받기만 좋아하는 기대하는 사랑이어서도 안 된다. 완전한 사랑을 한마디로 명쾌하게 딱 잘라 말하는 것 자체가 언어의 사치일 수도 있으나 완전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먼저 무공해 산소처럼 산뜻해야 하고 그 사랑의 밝음이 나로부터 출발해서 상대를 환하게 변화시키는 성장하는 사랑이어야 하며 더불어 완전한 믿음, 완전한 이해, 완전한 배려, 완전한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리 금 술 좋은 부부일지라도 어느 한쪽의 이해와 믿음과 배려 더 나아가서 완전에 가까운 지혜가 없었다면 그들은 더는 사이좋은 부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매번 들숨 날숨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자동차 매연가스며 공장에서 뿜어 나오는 나쁜 공해 속에서 살면서도 별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산소라는 이름의 공기가 대기 중에 떠도는 오염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어느 정도 정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깊이 있는 배려와 사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고마운 사랑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랑으로만 인식한다면 우리가 늘 상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즈음에서 나는 아무리 돼 내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들,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 다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도 그들 나름의 질서와 우주의 법칙 속에서 존재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그릇에 어울리는 빛깔과 향기를 뿜어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때때로 큰일에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고 염려해주지만 사소한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지나치리만큼 자신의 욕심만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수롭지 않은 것에 마음 상하고 시간을 빼앗기며 우리의 정신마저도 스스로 만든 벽에 의해 한동안 불편한 상태로 감금 아닌 감금 상태의 시간을 지속한다. 이런 불안한 상태로서는 완전한 사랑의 모태에 근접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실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양 착각하며 미소 짓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다. 하여, 나는 사랑하기 위한 혹은 사랑받기 위한 첫걸음으로 열린 생각 위에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낄 수 있어 행할 수 있는 마음을 열어젖히라고 나직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거듭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므로 동시에 행복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어냐고 그 누군가 묻는다면 한치의 주저함 없이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누군가를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용서와 화해를 위한 용기도 절로 생긴다. 또한, 사랑은 불가능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삶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덕목 중 으뜸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불씨는 인간을 인간답게 한 더 성숙시키는 발효 효소와 같은 행복한 양념이기 이전에 우리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여 주는 역할을 하는 필요충분조건에 해당되는 건강하고 고귀한 감정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해서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으로 확대해 나간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확인하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자신 역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변화되기도 하기에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도 그 반대로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들도 많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의 단점 중 하나는 치유(治癒)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중심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실 속에서 만나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안주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기를 바라면서도 무조건 적인 사랑보다는 자기를 더 드러내고자 하고 바라는 사랑이 더 팽배한 이유로 사랑, 그 목마름에 대해 더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랑,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온통 내 것으로 보이던 세상이 어느 순간에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번민(煩悶)과 고독(孤獨)의 늪에 빠져 자신마저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랑은 운명적으로 찾아오지만 또한 사랑은 용기라는 이름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운명과 용기를 섞은 사랑을 취(取)하고 싶고 인고의 성숙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 상대방을 위해 혹은 나를 위해 함께 행복해지는 사랑, 그것은 분명 말하는 것 이상으로 몇 배 더 많은 노력과 인내와 너그러움을 필요로 하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값진 일임에 틀림 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도 능력이며 의지며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여기서 나는 니이체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사랑이란 사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상태이다. 환상의 힘은 달콤하게 하는 힘과 변형시키는 힘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사람이 사랑에 빠져있을 때 다른 때보다 더 잘 참으며 모든 일에 순응한다. ’
사랑은 그만큼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이다. 한없이 나약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격려해주는 말 한마디가 비록 자신이 알고 있는 말이고 해결방안의 한 방법으로 자신이 먼저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해주는 말은 지혜의 샘물처럼 맑고 투명해 자신을 어느 새 맥가이버처럼 만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용기이며 능력이며 배려이며 이해다. 하여, 사랑은 위대하다.
인간의 마음은 주는 사랑, 받는 사랑으로 인해서 무한정 가꾸어 질 수 있는 정원과도 같다. 자신과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이야말로 자갈밭을 고르는 지혜를 터득 할 수 있을 것이며 끝내는 마음에 좋은 텃밭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첫째조건이 열린 마음이라야 한다면 두 번째 조건으로 사랑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기존에 있던 장점과 이전에 드러나지 않은 장점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랑, 다시 말해서 사랑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남편이 혹은 아내가 자신보다도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의 밑바탕에는 열린 마음과 서로에게 힘이 되는 온전한 사랑의 씨앗이 싹튼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완전한 사랑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과 몸 사랑 어느 것 하나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될 때 서로를 온전히 읽어 내릴 수가 있으며 또한 우리의 정신을 더 풍요롭게 해 혼의 정화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인 이상 완전한 이해, 완전한 사랑, 완전한 지혜는 100%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온전히 나를 버리고 너를 생각하는 순수한 무균질의 사랑은 실제로 기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있을 수도 없다.
인생, 그 끝없는 너른 바다를 살아가면서 완전한 사랑에 다가가고자 하는 순수한 사랑을 저마다 가슴속에 등불처럼 품고 살아가지만 자신은 정작 그 누군가에게 있어서 완전한 사랑을 위해 헌신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였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부정적이라는 서글픈 모순이 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사실,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에 만족하기보다는 돌고 돌아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어딘 가에는 꼭 있을 것만 같은 파랑새나 무지개를 찾고자 하는 어리석은 욕심.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되풀이하는 관계 속에서 더 인간적일 수도 있다는,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말은 때때로 자기 모순에 빠질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모순인 줄을 알면서도 쉬 놓지 못하는 거기까지가 우리네 사람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사랑은 욕망이 넘실대는 몸 사랑만으로도 온전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이해되어지고 용서되어지는 정신적인 것만으로도 온전할 수가 없다. 만약에 그 누군가 완전한 사랑에 근접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마주보는 상대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외 사랑에 그칠 뿐이다. 사랑은 시작하기란 쉽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가꾸어 나가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여, 이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이름만 무성 할 뿐 완전한 믿음, 완전한 이해, 완전한 배려, 완전한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신과 몸 사랑이 함께 충만한 완전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현재하고 있는 사랑이 처음처럼 한결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이 간절할 것이다. 하여,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은 없으며 불멸의 사랑에 대한 소망만이 존재 할 뿐이다 라고 어설프나마 결론을 내리고 싶다.
2003년 06월 21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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