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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5.

2003년 마지막 주말(12월 28일) 남편과 함께 대덕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열리는 03 열린 음악회에 갔다. 스포츠,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거라면 가리지 않고 즐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전시회나 공연을 보러 갈 때 나 혼자 가거나 코드가 맞는 친구랑 갈 때가 대부분이지만 아이들에게 문화는 쉽고 즐거운 것이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식시키고 싶은 마음에 가기 싫다는 남편은 집에 두고 두 아이와 함께 셋이서 외출을 하는 날도 더러 있다.

 

여행, 독서, 집안 꾸미기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나와 참 많이 다른 남편을 내 취향이나 내 감정코드에 근접한 스타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집안일이나 아이들에 대한 투자가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하나 둘 더 늘려 가는 나를 지켜보면서 일 년에 서너 차례 욕심일 수 있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줄여도 가족들과 내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한꺼번에 서두르지 말고 하나 둘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나가라고 조언을 잊지 않는 남편 입장에서 보면 오랜 시간 익숙하게 길들어져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사람의 습관이나 어떤 사람이 행했던 기존의 것들로부터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누군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분명 했을 것이다.

 

가끔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남편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작전을 몰고 가는 지혜(?)를 발휘해서 함께 가기도 하는데 오늘 역시도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남편을 지난여름 재즈(jazz)공연에 데리고 갈 때처럼 결국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고는 차로 가면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복잡한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걸어가기로 하고 대문에서 우리부부가 외출하는 걸 알기라도 하는 듯 꼬리를 흔들며 며칠 전 내 생일날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은 코트자락과 긴 머플러 끝자락을 물려고 난리를 치는 진도견인 백구와 나래를 어렵게 떼어놓고 집을 나섰다.

 

먹거리골목으로 지정 된 곳 중 유난히 레스토랑이 많이 밀집 된 거리를 걸으면서 평소 우리가족이 즐겨 가는 르네상스레스토랑을 지날 때 집에 남겠다는 두 아이가 떠올라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대덕문화전당에서 불과 300M 남짓 떨어진, 선지 국으로 유명한 앞산대덕식당 앞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공연이 시작되려면 30분은 족히 남아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공연 장소에 도착해 보니 무료입장에 오는 순서대로 초대권에 좌석번호를 매기는 걸로 되어있기 때문인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긴 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움직이는 지렁이몸통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줄 속에서 남편이 뽑아다 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좌석 배정 받을 차례를 기다려보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앞 몇 번째 줄에서 좌석 600석이 다 채워져 결국 우리는 서서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유료입장이 아닌 줄 서서 무료공연을 보는 건 처음인 남편은 좌석도 없이 서서 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못마땅한지 초대권을 너무 많이 남발했다고 몇 마디 불평을 쏟더니 정작 공연장 안에 들어가서는 별다른 내색 없이 아내인 나와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03 열린 음악회는 공연의 질과 금액에 비례해서 R석, S석, A석 등... 좌석을 선택 할 수 있는 상황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에 남편의 감정에 대해 모르는 척 했다.

 

무대주변을 장식한 비너스상과 아폴로신전을 연상케 하는 무대연출도 유료공연에서 보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빈약하다는 생각마저 떨칠 수 없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TBN 교통방송 진행자인 노미경씨의 사회로 막은 올랐다. 소년 소녀 합창단 ‘리틀앙상블’의 「사랑과 축복」을 등 3곡을 감상할 때만해도 여느 합창단과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해 은근히 까다로운 남편이 실망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순간 떠올리며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 부부가 자리 잡은 곳이 음향기기와 카메라 장비가 놓여있는 바로 옆이어서 600석 규모의 대덕문화전당에 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린 복잡한 상황에서 서서 공연을 지켜보아야 하는 자리에 대한 별 불편함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번째 순서로 가수 한영애씨가 나와 그녀의 대표 곡인 ‘누구 없소?’와 루씰, 조율 등을 불렀다. 라이브 하는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보았지만 관객을 들뜨게 하는 마력을 그녀는 분명 가졌을 거라고 자못 기대를 하고 왔던 내 예상과 달리 가창력은 있지만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 당겨 묶는 에너지는 기대 이하였기에 정말 이러다가 남편 말대로 무료공연의 수준을 실감하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작 그날 공연의 열기를 무르익게 해 준 것은 성악가들이었다. 신의 목소리라고 예찬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울려 퍼지는 음악들...서서히 높아진 열기가 절정에 이른 것은 대구 최고의 Saxophone 연주라 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김인규씨가 귀에 익숙한 곡인 Love Story와 Forever in Love를 연주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화된 듯 오로지 그 공간에는 Saxophone의 아름다운 선율만이 가득했다. 감미로운 연주에 점점 깊숙이 젖어 든 나는 문득 문득 내 앞에 향 좋은 따스한 커피 한잔이 놓여있으며 오돌토돌한 느낌의 항아리에 채 피지 않은 백합 몇 송이가 고귀하고 순결한 자태를 안으로 감춘 채 수줍은 모습으로 꽂혀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착각은 또 다른 착각을 불러낸다고 했던가? 찰나처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래 전 장편소설로 기획하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쓰고 있는 소설 "바람꽃" 속 인물들이 하나 둘 현실 속으로 걸어 나오는 듯 했다. 조율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감정도 Saxophone 선율이 멈추자 자연스레 끝이 났다.

 

삼성라이온스와 동양 오리온즈의 치어 리더 걸인 댄스 그룹 ‘레크맨’ 들이 나와 빠른 곡에 맞춰 시원시원한 춤동작을 선보이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흥에 겨운지 소리를 지르며 열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마음과 몸은 이미 경쾌해질 대로 경쾌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몸과 머리 손은 각각 흥에 겨워 가벼운 놀림을 시작했다. 어떤 공연이든 하나가 된다는 건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즐거운 놀이를 찾으러 왔다가 함께 동요되지 못한다면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기에 가능하다면 내가 선택한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만은 최대한 자유롭고 싶고 최대한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지막 차례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영일만 친구’로 잘 알려진 낭만파 가수 최백호씨 무대였다. 별로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본인의 말과는 달리 관객들을 웃기는 그를 보면서 나와 남편도 다른 여느 사람들과 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애수가 깃 든 부드럽고 낮은 음색은 앵콜송을 몇 번이고 이어가게 했다. 마지막 앵콜송을 무반주 노래로 마침표를 찍은 그날 공연은 약 두 시간에 걸쳐 막을 내렸다.

 

공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진동으로 해 둔 내 휴대폰에 두 번씩이나 전화를 건 아이들이 마음에 걸려 공연장 밖 계단아래쯤 왔을 때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 우리 지금 사고 치려고 하는데 괜찮죠?" 라고 말하는 두 아이의 명랑한 음성이 동시에 들렸다. 표현은 사고 치려고 한다고 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감을 잡은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자세를 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둘이서 저녁밥을 지으려고 쌀을 30분전에 씻어서 담가두었는데 지금 압력밥솥에 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놀라움 반 걱정 반으로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니까 엄마가 가서 할 테니 그냥 두라고 했다가 밥하는 순서를 정확하게 알고 말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조심해서 한 번 해보라고 일러두고는 전화 받는다고 풀었던 팔을 다시 남편의 팔에 살며시 끼웠다.

 

아이들 이야기와 그날 공연 이야기를 하며 돌아오는 길은 집을 나설 때보다 더 빨리 시간이 소요 된 느낌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밥 끓는 냄새가 기분을 더 한층 행복하게 만들었다. 공연장에 들어 갈 때 받은 야광막대기를 아이들에게 건 내고는 외출 할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고 다시 주부 본연의 자리로 돌아 와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레스토랑분위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접시에 돈가스와 밥 그리고 소스를 각자의 기호에 맞게 준비를 하고 점심식사 때 먹고 남겨 둔 국이랑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 안에 있던 반찬을 꺼내서 즐거운 이야기와 행복한 웃음이 묻어나는 저녁시간을 만들었다.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 한 번도 직접 밥을 지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엄마와 아빠가 외출한 시간 동안 두 아이는 처음으로 밥을 지을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를 생각 해 보니 그 시간 평소처럼 텔레비전을 보거나 둘이서 책을 보았다면 그 날 두 아이에게는 특별한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남편과 아이들이 공연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냥 집에서 쉴까 하고 포기했다면 그 시간 그 날만의 특별한 추억은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 나는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는 생각을 올 한해 늘 가슴에 품고 다닐 화두( 話頭 ) 중 하나로 기억되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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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하루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매 순간 헛되이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루가 모이고 모이면 어제와 오늘이 되고 또 다른 내일을 설계 할 수 있는 빛나는 희망이 되나니 스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이여, 그대 자신을 살아있게 하고 들뜨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그대 삶을 주관하는 주인공이 되라. 생각은 행동하기 이전에 하고 행동 한 후에는 가능한 한 후회하지 마라.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일치하는 당신이라면 더 더욱... 노력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가까운 어느 날 더 나은 삶이 그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행동하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잊지 마라. 삶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는 사실을......

 

 

 

2004년 01월 03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