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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26.

언젠가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학교 교문 앞에서 작은 상자 안에서 울고 있는 병아리를 보고 한참을 구경했다며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벗어 놓기가 무섭게 그날 본 병아리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했다. 딸아이의 상기된 표정과는 달리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내게 조바심이 난 딸아이는 앞에 있는 나에게 한 걸음 더 바싹 다가와서는 연달아 엄마, 엄마 불러대며


"엄마도 병아리 만져봤어?"
"만질 때 기분이 어때?"
"정말 병아리가 엄마 닭이 되면 알도 낳을 수 있어?"
끊임없이 해대는 질문에 나는 정신이 쏙 달아나는 듯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기어이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으니...
대문 밖에서부터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여느 날과 달라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데 후다닥 현관을 들어서기가 바쁘게 신발을 던지듯 벗어 놓고는 집안 구석구석 한참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 구석 궁금증이 차 올라 더 이상 아이의 행동반경을 지켜보지 못하고


"신애야, 너 뭘 그리 찾니?"
"엄마, 적당한 상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에 없어요?"
"상자는 무엇에 쓰려고?"


그제야 아이는 잊었다는 듯 제 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펼쳐 보였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이의 손바닥에는 이제 막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메추리 새 한 마리가 그 작은 몸집을 파르르 떨면서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너 어떻게 키우려고 이 작은 것을 데리고 왔니?"
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또 제 방으로 달아나는 아이
"엄마, 이것 좀 보세요."
"학교 앞에서 200원 주고 메추리 새 사니까 먹이도 주었어요."



제 딴에는 잘 키워 보겠다는 각오를 했겠지만 작은 생명을 잘 자라게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일 수만은 없기에 걱정부터 앞섰다. 저러다 혹여 죽으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의 정성에 협조하기로 마음먹고 잘 쓰지 않는 적당한 크기의 높이가 낮은 양동이를 찾아내어 아이가 입기에는 좀 작은 듯한 면 티를 푹신하게 깔고 모이랑 물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그릇을 준비해주고 나니 볼수록 정이 가고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나 역시 메추리 새 앞에서 쉬 떠나지를 못했다.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가면서도 못내 안심이 되지 않은지
"엄마, 잘 부탁해요"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돌아서는 아이를 보며
천사의 모습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녁 무렵 우리 집은 아들녀석과 딸, 남편, 나까지 합세해 서로 메추리 새 이름을 지어주느라고 야단이고 한번이라도 만져보려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둥 한동안 시끄러운 행복 소리를 내며 시간을 보냈다. 메추리 새의 이름은 딸아이의 소원대로 삐삐라고 정하고 한번씩 저마다 "삐삐야" 하고 불러보며 마치 동생을 얻은 듯 두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꿈나라로 들어갔다. 새벽 3시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잠자는 남편이 깨지 않도록 침대에서 살며시 내려와 거실로 나갔다.


아! 이 일을 어째...
삐삐가 뒤집혀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딸아이가 잠을 자다 말고 눈을 비비며 엄마하고 부르지 않은가?
"왜 자지 않고 일어났어? 아직 새벽인데..."
"엄마, 삐삐가 걱정이 돼 잘 수가 없어."
그 순간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삐삐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베란다로 가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아이들의 바램처럼 삐삐가 아무 탈없이 잘 자라 주기를 소원했다.


다음날, 두 아이는 일어나기가 바쁘게 서로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삐삐에게 인사를 하고 언제 준비했는지 짧은 편지를 들고 와서 읽어 주었다.
"삐삐야, 잘 잤니?"
"오늘 언니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삐삐 생일 잔치해 줄게. 그러니까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옆에서 누나의 짧은 편지를 듣고 있던 아들 녀석 불쑥 한마디 거들었다.
"누나, 삐삐는 어제 우리 집에 왔는데 왜 오늘 생일이야?"
그 바쁜 아침시간에도 두 남매는 종알종알 쉴 새 없이 종달새처럼 지저귀고
나는 두 아이의 지저귐 속에 내 행복이 함께 빛난다는 것을 가슴 따스하게 느끼며
늦은 단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한 남편을 깨우러 안방으로 건너갔다.


점심 무렵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 같아
주차장(우리 집 1층) 텃밭에 내려가 잔파를 뽑고 있는데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급히 뽑은 파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니
"엄마, 삐삐가 이상해."
"왜?"
"아마 죽은 것 같아?"
"뭐?"
재차 확인을 하고 삐삐를 아이의 손에서 건네 받았다.
아직도 따뜻한 체온......
불과 몇 분전에도 움직이고 울었는데 할말을 잃어 버렸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은 생명 하나가 떠나간다는 사실도 가슴 아팠고 글썽이는 아이의 큰 눈망울을 보며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아이의 착한 심성에 상처가 아닌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신애야, 우리 삐삐 묻어주자."
"다음 세상에는 어른 삐삐가 되어 알도 낳고 엄마 삐삐도 될 수 있게 우리 텃밭에 묻어 주자."
호미로 땅을 정성스럽게 파고 한쪽 구석에 묻어 주고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도 아이의 발걸음도 마음 탓인지 둔탁한 음을 낸다. 탁 탁 터벅터벅......


"엄마, 정말 삐삐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나는 안다. 한번 죽은 새는 땅속 깊이 녹아들어 자연의 거름이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순간만은 거짓말쟁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럼, 다음 세상에는 삐삐도 엄마 아빠 새랑 아주 행복하게 잘 살 거야."
"자라서 알도 낳을 수 있는 멋진 삐삐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우리를 기억할 수 도 있을걸."


나는 또 안다. 언젠가는 제 또래 아이들 중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이 야무진 아이가 내 말을 완전히 믿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아이의 심정은 정말 엄마 말처럼 되었으면 한다는 사실도.


그래. 몇 만년 억겁의 시간이 돌고 돌아 언젠가는 아이의 바램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끈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먼 훗날 어쩌면... 그 마음의 연결고리가 몇 만년 억겁의 시간이 돌고 돌아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내 가족을 온전히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내가 알고 있는 신이란 신은 모두 불러내어 절절한 기도를 했다. 어느 종교에도 귀속되지 않은 무신론자인 나도 이렇게 가끔은 하느님, 부처님을 찾을 때도 있다.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2000년 10월 07일 - 喜也 李姬淑